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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May 02. 2023

문학산 꼭대기에 살 때

"쿵쾅쿵쾅"

어린 나는 집안에 혼자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엄마도 없이 홀로 집에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천장 쪽에 들리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무서워서 자지러지게 울어댔던 일만 생각난다.


그 당시 엄마에게 은 바로는 우리 집이 곧 헐리게 될 거라고 하셨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지붕을 수리하는 소리였는지, 정말로 때려 부수려는 소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엄마의 말처럼 누군가가 우리가 사는 곳을 금방이라도 깨부수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릴 적 우리는 인천 문학산 꼭대기에 살았다.

재개발 얘기로 시끄럽던 산골짜기에서 동생과 내가 영유아기를 보냈다. 너무 어릴 때 일이라 남아있지 않은 게 자연스러울 텐데 잊기에는 너무 강렬하고 굵직했던 추억이 있어 아직까지도 오래된 흑백사진을 복원한 것처럼 빛이 없는 밍밍한 색깔들로 머릿속에 찍혀있다.


방하나 부엌하나에 아궁이 하나씩 딸려있는 집들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일렬로 줄 서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노는 걸 좋아했다.

복도를 신나게 놀던 어느 날은 구덩이처럼 푹 파여있는 아궁이에 한쪽발이 빠져 크게 화상을 입기도 다.

화상자국은 지워지지 않는 흉측함으로 남아있고 엄마는 내 발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나시는지 표정과 빛이 달라졌다.

"어째 그날따라 네가 불안불안 하드라.

저걸 가서 잡아야지 하던 찰나에......

병원도 못 데려가고 발을 시원하게 해 주면 좀 나을까 싶었는데 옆집에 매어놓은 그네가 있었어. 그거라도 태워괜찮아질 것 같아 그걸 빌려서 앉혀놓고...... "

발을 시원하게 해주고 싶은데 생각할 수 있는 게 그네밖에 없었다니  마음이 전해지니 기억조차 통증에 이까짓 화상자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산 집은 동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방안에 걸레가 얼어버릴 정도로 날씨가 매서웠던 그날은 단칸방에 못 보던 자줏빛 커튼이 쳐져 있었다.  엄마와 커튼 하나로 분리된 채 얼음을 깨칠 만큼 찢어지는 신음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나는 그날의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던 건지 겨우 숨소리만 내며 아빠무릎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날의 온도와, 바삐 움직이던 식구들의 긴장된 모습과, 엄마 얼굴에 붙어있던 젖은 머리카락까지......

끊기고 이어진 필름처럼 조각조각 사진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적어도 7살 때까지는 그곳에 살았던 것 같다.

니트로 짠 바지를 입고 플라스틱 바퀴 달린 말을 타고 놀던 세 살쯤 돼 보이는 동생의 모습이 문학산을 배경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대문하나에 여러 집이 모여 살던 그곳에서 우리는 이웃과 콩나물국까지 나눠먹으며 지냈었다.

누구네집에서 고구마라도 삶으면 모두 그곳에 모여 남김없이 나눠먹고 옆집 광석이네 집에서 사과를 깎으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쟁반으로 떨어지는 껍질까지 날름날름 받아먹던 기억이 있다.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던 그때가 그래도 내겐 동화 속 장면처럼 소소한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그 과거를 더듬는걸 엄만 참 싫어하셨다.

"넌 왜 자꾸 그때 얘길 하고 그러냐.

너 그 노래 들어봤니? 다시 가라 하면 나는 못 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 가네.

그게 딱 내 얘기다."

싫다고 하시면서도 엄마의 입을 통해 하나둘씩 꺼내어지는 그때의 이야기엔 탄식과 한숨이 따라다녔다.

"어휴. 말도 말아. 그  문학산 꼭대기에 살 때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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