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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May 21. 2023

딸 생일날만 되면 생각나는 엄마

18년 전 오늘 나는 딸을 낳았다.

그날은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고 친정엄마와 여성병원으로 향했다. 엄만 항상 병원에 동행했다.

고작 병원에 같이 가는 것뿐인데도 우린 소소하게 행복했다. 가는 길에 수다도 떨고, 오는 길에는 시장도 들러서 점심도 먹고, 장도 보고.

그날은 오는 길에 해물칼국수를 먹기로 했는데 그만 병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양수양도 좋고, 다 좋습니다. 혹시 배가 아프거나 양수가 새는 것 같거나 하면 새벽이라도 병원에 연락 주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일어서서 나가려다 문득 얼마 전부터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 게 이상해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 선생님, 요즘 기가 전혀 움직이질 않더라고요."

"?"

의사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몇 주간 계속 그랬는데요." 

"검사 좀 받아봐야겠는데요. 일단 분만 대기실로 갈게요."

밖에선 엄마가 우두커니 앉아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검사해야 한대."

"응? 왜?"

"기가 안 움직인다고. "

분만대실까지 따라온 엄마를 뒤로하고 나는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검사를 속전속결로 하는 느낌은 없었다. 계속 기다리고, 지켜보고...... 왔다 갔다 바닥을 스치는 간호사들의 슬리퍼 소리, 모니터에서 들리는 태아 심장박동소리만이 분만대기실을 감싸고 있었다. 간간이 산모들의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의사가 들어왔다. 외래 중간에 짬을 내서 온 듯했다. 유도분만과 제왕절개 중에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마침 부랴부랴 남편이 조퇴를 하고 달려왔고 시댁에 전화를 걸어 결정을 하려는 듯 내내 휴대폰만 붙잡고 있었다. 시댁은 태어난 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안이었다.   

결국 2005년 5월 18일 저녁 6시쯤 아이를 낳으면 사주가 좋다는 대답을 듣고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나는 분만대기실에서 병원침대로 바로 이동해 수술실로 들어갔고 수술이 끝나고 몽롱한 정신에 눈을 떠보니 남편이 옆에 있었다.

" 건강하대. 넌 안 아파? 엄마 보고 싶지? 장모님 불러줄까?"

기다렸다는 듯 들어온 엄마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

 "어휴. 멀쩡하게 들어가서 애가 만신창이가 됐네."

엄만 아기 얘긴 꺼내지도 않고 내 몸에 대한 질문만 해댔다.

많이 아프냐, 어지럽지는 않냐, 목 마려워서 어쩌냐, 배고파도 조금만 참자, 못 견디게 아프면 얘기해라......


정신을 차리고 병실로 내려왔고 엄만 계속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네가 들어가서 안 나오는데 핸드폰도 없고 어찌나 답답하고 걱정이 되던지 이제나 저제나 나올까 계속 밖에서 기다리는데 누굴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도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지."

"뭐? 거기서 계속 기다렸다고?"

그렇다. 엄마는 돈 아까워 핸드폰도 안 쓰는 사람이었다. 누구랑 통화도 할 수 없이  상황 돌아가는 것도 모른 채  오랜 시간 동안 밖에서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다렸던 것이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땐 금방, 다  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턴 해마다 딸 생일이 돌아오면 그 일이 생각나고, 마음이 미어지고, 눈물이 난다.

"생일축하한다. 근데 나는 왜 네 생일 날만되면 할머니 생각이 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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