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먼 앨버른의 〈Everyday Robots〉를 듣던 날에
“Everyday robots on their phones~”
몇 번 들어 봤다고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제법 흥얼거리던 너희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음이 재미있게 들렸나 보더구나. 데이먼 앨버른의 〈Everyday Robots〉. 아빠가 이 노래가 왜 만들어졌는지 설명해 주었지. 가수가 요즘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모습을 보고 풍자하려고 만든 노래라고 말이야. 아빠의 설명처럼 노래 속 사람들은 온종일 휴대폰에 빠져 주변 세상과 단절된 채, 점점 로봇처럼 살아가고 있었지.
엄마는 그 가사들이 너무나 공감됐어. 요즘은 핸드폰이 미워. 아니, 무섭기까지 하단다. 아직 뇌가 다 자라지 않은 너희에게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어른들까지도 말이야. 그런 와중에 하필이면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까지 읽어버렸지 뭐니. 원래 어른들의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책을 쓰려던 저자는, 자료를 조사하며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고 했지.
바로 청소년 정신 건강의 붕괴.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특히 청소년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졌고, 이 현상에서 스마트폰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콘텐츠 회사들은 상업적 목적을 위해 자극적인 영상을 끝없이 쏟아내지. 순수한 아이들은 그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지 못하고, 알고리즘은 너희를 붙잡아두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던져대더구나. 너의 맑은 눈동자가 알고리즘의 파도에 휩쓸려 흐릿해지는 것이 엄마는 너무나 겁이 났단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조너선 하이트에게 엄마의 목소리를 보태고 싶었어. 실제로 서명운동도 했지. 어린아이들이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SNS를 함부로 시작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자고 말이야.
린이가 “친구들 다 폰이 있어요. 저도 폰 사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엄마에게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단다. 바로 엄마 폰의 명의를 너와 함께하자는 제안이었지. 어차피 엄마 폰의 주소지는 신발장 안이라,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거든.
“엄마 폰을 같이 쓰면 되겠다. 엄마 어차피 잘 쓰지도 않으니까, 친구들이 번호 물어보면 엄마 번호를 알려주렴.”
그렇게 지금은 엄마와 린이의 ‘공동 명의’ 핸드폰이 되었지. 하루는 쉴 새 없이 톡 알림이 와서 봤더니, 너의 친구들이 네 이름을 수도 없이 부르고 있더구나. “린아, 린아, 린아. 뭐해, 뭐해, 뭐해.”
아직 핸드폰이 신기하기만 한 너희들의 통화는 또 어땠는지 아니? 수화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당황하며 “엄마, 뭐라고 말해요?” 엄마에게 폰을 넘기던 너. 마지막 인사도 없이 뚝! 끊어버리던 그 서툰 모습들. 그래도 린이가 이 폰으로 친구들과 연락하며 혼자만 동떨어진 느낌을 조금이나마 덜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엄마가 바라는 거란다. 엄마가 곁에서 다 지켜볼 수 있으니 안심이 되기도 했고 말이야.
아빠와 엄마는 너희에게 개인 폰을 사줄 수가 없단다. 청소년 시기의 무분별한 핸드폰 사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버렸기 때문이야. 지금 너희를 지키는 방법은 이뿐이라고 생각한단다. 주위 사람 모두가 말리지. 그러다 왕따 당한다고. 하지만 엄마는 너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치고 싶지는 않단다.
하루 20분의 핸드폰 사용 시간. 린이는 오후에 친구들과 톡 하는 시간 10분, 자기 전에 10분, 그렇게 총 20분의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지. 온종일 쌓여 있던 많은 톡을 확인하고 답을 하며 즐겁게 보내는 그 모습. 그렇게 지금처럼, 딱 지금처럼만 핸드폰과 친하게 지낼 수 있겠니? 아이폰을 세상에 등장시킨 스티브 잡스조차 자식에겐 사주지 않았다던 그 무시무시한 물건을, 엄마가 어떻게 너희에게 덥석 사주겠니.
세상은 소란스럽게 너를 부르지만, 엄마는 너의 고요를 지켜주고 싶어. 우리 앞으로도 핸드폰 공동 명의자로서 잘 지내보자. 아마 선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핸드폰을 찾게 되면, 명의자가 한 명 더 추가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때가 되면 엄마가 너를 받아주었듯, 너도 선이를 선뜻 받아 줄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