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을 거스르는 사랑, '주모'가 되는 법
태생적으로 듣기보다 말하기에 최적화된 관상을 가지고 태어났다. 사진에 귀가 잘 담기지 않을 만큼 뒤로 딱 붙어 있는 반면, 입은 툭 튀어나와 빨간색 립스틱은 꿈도 꾸지 못하는 구조다. 한마디로 말하기 좋아하고 남의 말 참 안 듣게 생긴 고집스러운 관상. 그런 내가 바뀌어야 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
"내가 '모모' 해줄게. 언제든 말해. 난 듣기 잘하는 '주모모'니까."
내 제안에 신랑은 "주모? 옛날 주막 주인?"라며 박장대소했다. 그는 요즘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조차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의 필요성이 점점 모호해진다고, 지금 삶이 만족스러워 다른 것이 필요치 않다는 남편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있어서? 나 때문에 친구가 필요 없게 느껴지는 거야?"
"응. 당신이 친구도 해주고 와이프도 해주니까."
참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래서 호기롭게 약속했다. 세상에서 듣기를 제일 잘하는 소녀 ‘모모’의 이름을 빌려와 ‘주모모’가 되어주겠다고. 언제든 친구가 필요할 때 나에게 털어놓으라고. 내 성이 주 씨이기에 자칭 ‘주모모’라는 근사한 이름까지 붙였다. 결국 ‘주모’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귀가 다 보여야 하는 여권 사진을 찍을 때면 귀 뒤에 화장지 뭉치를 덧대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진에서 내 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돌출된 입을 가진 사람은 입으로 먹고산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평생 학원 강사로 살아왔나 싶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듣기’란 참으로 험난한 영역이었다. 생긴 것부터가 듣지 못하는 사람인데 어쩌겠는가. 귀가 큰 동물들은 청각이 예민해 저 멀리 적의 소리도 잘 듣는다는데, 토끼가 작은 몸을 빠르게 숨길 수 있는 것도 그 귀 덕분이라지 않은가. 뒤로 딱 붙어 들리지 않는 귀를 가진 나에게 경청이란 이토록이나 어려운 합리화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주모’를 자처한 것은 진정한 사랑의 발로였을 테다. 가족밖에 모르는 이 사람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다는 깊은 진심. 그 마음 하나로 나는 들으려 애썼다. 주식의 ‘ㅈ’자도 모르던 내가 비트코인이 왜 중요한지, 파란색은 우울의 색이고 빨간색은 환희의 색이라는 자본주의의 문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발단은 프로 주식러를 꿈꾸는 남편이었다. “당신 성향엔 안 맞으니까 내가 해볼게”라며 그가 총대를 멨다. 바야흐로 너나할것없이 개미가 되어 커피값이나 치킨값을 벌었다는 동네 아줌마들의 무용담이 카페마다 넘쳐나는 시절이다. 나 역시 좋아하는 구글 주식이라도 사볼까 싶었지만, 나를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남편의 만류로 우리는 길을 나뉘었다.
남편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주식 책을 쌓아두고 밤낮없이 유튜브를 돌려보며 공부에 매진했다. 열정이 뜨거울수록 그 온기를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받아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월요일과 수요일, 밤 10시에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주식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예전 같으면 야식을 먹었겠지만, 건강을 위해 음식을 끊은 대신 그는 입으로 머릿속 정보들을 쏟아냈다. 아침 6시 기상이 필수인 나에게는 눈꺼풀이 천근만근인 시간이었으나, 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려 애쓰는 그가 안쓰러워 귀를 더 쫑긋 세웠다. 말하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기도 하는 법이다. 그의 주머니가 곧 내 주머니라는 마음으로 나는 기꺼이 ‘경청’이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라. 나는 너의 말을 들을 테니. 주저리주저리 말해보거라, 다 받아주마.’
나의 예감은 늘 백발백중이었다. 의기소침한 날은 파란빛이었고 활기찬 날은 붉은 빛이었다. 입이 근질근질해 보이는 남편에게 슬쩍 물꼬를 터준다.
“오늘은 좀 올랐나 봐?” “어떻게 알았어? 오늘 천만 원 벌었어!”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온종일 얼굴에 수익률을 적고 다니는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데. 그렇게 시작되면 온 정신을 그의 입에 맞추고 눈에는 오롯이 주식 차트만 담기도록 세팅해야 한다. 한두 시간 이어지는 끝없는 주식의 세계로 내 몸을 맡긴 지 어느덧 1년이다.
한번은 너무 눈이 감겨 들키지 않으려 눈이 부신다는 핑계로 불을 끈 적도 있다. 따박따박 대답을 하느라 했는데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남편은 이제 그만 자자며 나를 재웠다. 어떤 날은 나도 즐겁게 들었지만, 잃은 날은 나도 같이 걱정스러웠다.
‘그러니 좀 더 참지. 왜 팔았어.’
내 입술 끝까지 차오르는 절대 금기어. ‘왜 그랬어’라는 말은 스스로의 손목을 자르고 싶었다 말하는 사람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을 꾹꾹 눌러 담아내야 하는 날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은 날도 있었고, 자책하며 며칠을 괴로워한 날도 있었다. 역시 자기의 직감이 맞았다며 만면에 미소를 숨기지 못하던 날들이 모여, 지금 우리에겐 ‘마이너스 2000만 원’이라는 결과가 남았다. 사실 잃은 날은 내 기분도 고달프다. 혹여나 남편을 채근하게 될까 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진다. 가장 큰 마음의 무게는 직접 손가락을 움직인 그에게 있을 것이기에, 그가 너무 무겁게 느끼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여보, 당신 정신 건강이 제일 중요해. 어떤 것도 당신보다 소중하지 않아. 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
잃었을 땐 나한테 말하지 말고, 딸 때만 말해주는 걸로 하자. 어때?
그럼 언제까지나 내가 당신만의 ‘주모’가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