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멈춰 세운 틈 사이로
39.2도. 9년간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전히 낯선 숫자에 안절부절못했다. 해열제를 먹어도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체온 때문에 다시 병원을 찾아야 했다. 독감 약을 투여받고 환각이나 각성 상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는 무서운 안내를 들은 지 3일 차. 모든 일정을 접고 딸아이와 한 몸이 되어 지내야 했다. 혹시 모를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기에, 평생 후회로 남을 상황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아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가지 못했다.
‘코미플루원스주’라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타미플루의 수액 버전 치료제를 투여했음에도 아이의 고열은 잡히질 않았다. 177,000원이라는 사악한 검사비를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제는 좀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5일에 걸쳐 먹어야 하는 약을 한 번에 수액으로 맞고 왔으니, 내 이론으로는 나아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또다시 슬슬 오르는 열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체온계는 다시 39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 상황을 대체 어찌해야 할까. 밥도 먹지 못한 채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된 딸. 열이 올라 춥다며 이불을 달라고 생떼를 쓰는 아이에게 얇디얇은 여름 이불을 덮어주고 얼음팩을 목에 올리며,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으련 싶었다.
“아이마다 좀 다른데, 보통 이 정도면 열이 떨어져야 하거든요. 아이 몸에 더 센 바이러스가 들어갔든지, 아이의 컨디션이 아주 나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들은 의사의 말은 마치 점쟁이가 마당에 감나무 있느냐 묻고는, 없다고 대답하면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둘러대는 꼴 같았다. 비유가 너무 심하다 말길. 나의 불안이 그만큼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들었고, 며칠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한 엄마의 날 선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뾰족하다 못해 베일 것만 같던 내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 건 의사의 처방이 아닌 병실에서의 작은 나눔이었다. 다시 열을 내리기 위해 수액을 맞아야 했고, 결국 입원 권고까지 받았다. 둘째 때문에 입원은 사치였지만 말이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고, 수액을 맞고도 우리는 입원실에서 더 대기해야 했다.
처음 입원실에 들어갔을 때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었다. 간절하게 카페인이 필요했던 나는 딸아이를 잠시 두고 내 몸에도 ‘수혈’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왔다. 딸아이가 먹을거리와 함께였다. 우리만 먹을 수 없어 옆 침대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작은 과자 두 개를 나눴을 뿐인데, 보답으로 커다란 하리보 젤리 한 통이 돌아왔다. “고맙습니다” 하며 웃는 아이들의 미소에 나의 날카로웠던 날들이 무뎌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자 8인용 병실이 가득 찼다. 아이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쥐고 있었고, 우리 딸도 폰을 갈구하는 애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멍하니 화면에 영혼을 빼앗긴 듯한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어쩌면 이 시간은 신이 우리에게 준 쉼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큰딸의 성장이—자신은 논리적이라 믿는 말대꾸라고 해두자—버겁게 느껴지던 찰나, 신이 직접 나서서 우리 둘만의 시간을 이토록 많이 만들어주려 하시는데, 이 황금 같은 시간을 고작 핸드폰에 뺏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딸에게 ‘머리카락 싸움’을 제안했다. 초등 저학년 때 이후로 해본 적 없는 추억의 게임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다시 왕좌의 자리를 차지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던 딸도 수액이 들어가자 얼굴빛이 되살아났고, 엄마와의 게임이 즐거운 듯 “엄마, 한 판 더 해요!” 하며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았다.
“엄마가 왕년에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엄마 머리카락은 언제나 ‘왕’이었지. 덤벼!”
그렇게 몇 판을 내리 이겼다. 그다음엔 챗GPT의 도움을 빌려 넌센스 퀴즈 대결이 이어졌다. 왕이 넘어지면 '킹콩'이라느니, 비가 자기소개를 하면 '나 비야'라고 한다느니 하는 싱거운 농담들이 병실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자꾸 핸드폰을 찾던 아이는 어느새 퀴즈를 맞히느라 눈을 반짝였고, 그 유치한 정답 하나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어서 과자를 나눠주고받은 하리보 젤리로 ‘색깔 맞추기’ 게임을 했다. 눈을 가리고 입에 넣은 젤리의 맛으로만 색을 맞추는 게임이다. 나는 젤리 두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단번에 맞춰버렸다. 노랑과 초록. 하필 딸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을 넣어준 덕분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엄마의 승리였다.
이런저런 게임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은 금방 흘렀다. 딸과 오랜만에 이렇게 놀아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동안 딸이 나만 보면 “안아줘요, 안아줘요”를 외쳐댔는지, 그 말이 어쩌면 귀찮게 느껴지진 않았는지 미안함이 밀려왔다.
‘엄마와의 진한 시간이 필요했었구나. 감사하게도 신이 딸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셨구나.’
보통의 아이들은 2~3일이면 열이 내린다는데, 우리 딸은 일주일을 꼬박 채우는 걸 보니 엄마와의 시간이 그만큼이나 간절했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문득, 내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계실 때가 떠올랐다. 임종실에서도 의사가 예상한 시간보다 일주일이나 더 계시던 어머니를 보며 나는 힘들어했었다. ‘오늘내일’이라던 시간이 일주, 이주일로 늘어나면서 나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수간호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은 환자의 의지가 강하다고만 하시는데, 우리는 장례를 준비해 두고 언제가 될지 몰라 밤잠을 설친다고. 이렇게 연명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사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만 산소호흡기를 떼고 싶다’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입에서 그 말이 나가기 전에 수간호사 선생님이 말했다.
“사람마다 시간이 달라요.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어떤 분은 짧기도 하고, 어떤 분은 좀 더 걸리기도 해요. 지금 환자분은 이별을 준비하고 계신 거고, 그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필요한 것뿐입니다.” 할 말을 잃었다. 우리와 헤어질 시간이 더 필요해서 그랬다는 말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거짓말처럼 그다음 날 아침, 내 얼굴을 보고는 이제 됐다는 듯 영원히 눈을 감으셨다. 어쩌면 그 시간은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가 센 게 아니라, 아이의 시간이 느린 것이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모두에게 같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시간 개념이 다른 것이다. 내 딸은 지금 B형 독감으로 일주일째 고열에 시달리며 엄마를 낮이고 밤이고 오롯이 독차지하고 있다. 이 아이에게는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질병은 때로 삶을 강제로 멈춰 세운다. 그리고 그 멈춰 선 틈 사이로만 비치는 사랑이 있다. 나는 39.2도라는 뜨거운 터널을 통과하며 온몸으로 느낀다. 내 엄마에게 필요했던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었음을, 내 딸의 뜨거운 일주일도 어쩌면 그녀를 위한 시간이 아닌 내게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