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쨍그랑거리는 수치심을 멈추고, 톡 쏘는 오늘을 선택하기까지
다급했다. 슬리퍼에 롱패딩을 입었다. 양말도 신지 않은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이 시렸다. 집에서 입던 옷 위에 급하게 롱패딩 하나를 걸쳤다. 아이들이 깰까 문을 힘껏 위로 들어 올려 소리를 잠재우고 닫기를 성공했다. 빨리빨리.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시원한 그 초록병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설레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위해 하루를 견뎠으니까.
코끝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이 시원했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내 목표는 CU. 딸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입장했다. 바로 직진. 내 눈앞에 시원한 초록색 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두 병으로 할까? 세 병? 기분 좋은 설렘.
오늘은 많이 힘들었으니까. 이제 18개월에 접어든 둘째의 변신이 힘들었으니까. 뭐든 자기가 하겠다고 덤비는 통에 잠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수도 없었으니까. 첫째는 첫째대로 자기를 봐주지 않는다고 투덜이가 된 지 한참 지났으니까. 답이 없는 육아에 넉다운이 된 나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 아이들이 잠들면, 나도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수많은 합리화로 호기롭게 3병을 선택했다.
계산대에 올려놓기가 민망했다. 다 알고 지내는 사이에 매일 소주를 이렇게 사 가는 아줌마라는 것이 왠지 나를 들켜 버린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눈치 보느라 한 병만 사가면 집에서 깊은 후회를 해야 함을 알기에 눈 딱 감고 올렸다. “오늘은 좀 마시고 싶네요.” 실없이 보이는 것 알지만 내 입은 벌써 어색함을 없애고 싶어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들켜선 안 되었다. 지난번 아이들 하원 시간에 소주를 사가다 옆집 아줌마에게 딱 걸린 적이 있었다. “언니, 웬 술을 그렇게 많이 샀어요?” “응, 그냥.” 얼버무리며 급한 척 그 자리를 피했었다.
양쪽 주머니에 두 병을 깊이 넣었다. 한 병은 가슴속에. 이렇게 개선장군 같은 마음으로 문을 위로 한껏 힘을 주어 밀어 소리 없이 재입성에 성공했다. 여전히 아이들은 자고 있고 나는 서둘러 따뜻해진 소주를 냉동실에 넣었다. 소주는 절대 얼지 않는다. 단, 더 맛있어질 뿐. 더 중요한 것은 내겐 그들을 얼게 놔둘 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 늘 쌓여 있는 생라면 하나 부숴서 유튜브를 켰다. 마냥 웃을 수 있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채널에 맞췄다. 소주잔 하나만 있으면 끝이었다. 완벽했다.
사실 이제부터가 관건이었다. 술을 마시는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신랑에게 들키지 않으려 시간을 정해 놓고 마셔야 했다. 연애 때도 술을 너무 좋아하는 나를 결혼 상대로 정해도 될지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는 남편이기에 그의 눈앞에서는 아무래도 절주를 하게 되었었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이었다. 앞으로 딱 한 시간. 한 시간에 끝낸다. 목표를 잡았다. 그래야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술을 마신 날엔 더 숙면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곯아떨어지면 되니까.
완벽했나 보다. 남편은 별 말이 없었고, 재활용 통에도 자랑스러운 초록병 3병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어떤 정신으로 치웠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정신도 없던 내가 식탁도 깨끗이 치워 두었다. 3병째 소주부터는 기억이 없다. 3병을 어찌 먹었는지? 어떻게 식탁은 치웠는지? 딸들은 그 사이에 일어나 나를 찾지는 않았는지? 이러다 알코올성 치매가 올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순간의 걱정일 뿐 다시 아이들이 잠든 밤이 되면 편의점을 향할 나를 알기에 또다시 모른 척 넘어갔다.
나도 모를 나의 행적이 궁금하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이들과 다시 전쟁을 시작해야 했으니. ‘아침을 차리고, 먹이고, 씻겨서 등원 차량에만 태우자. 이것만 하면 다시 잘 수 있다.‘속으로 주문을 걸며 그 아침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둘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아침 전쟁 통에 집은 엉망진창, 내 속도 엉망진창.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잠들 수 있었다. 그 미소는 승리감이었을까, 아니면 현실로부터 도망쳤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나를 갉아먹는 마취제였을 뿐이란 걸 안다.
남편이 좋아할 치킨을 픽업하러 가는 길이다. 찰나의 기억이 스쳤다. ‘슬리퍼에 롱패딩을 입고 이렇게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어디론가 뛰어가곤 했었지, 눈앞에 있는 저기 저 편의점으로. 거기서 늘 나를 위로해 준다고 생각한 그 초록병들을 사들고 누구에게 들킬세라 품에 깊이 숨겨서 집으로 오곤 했지.’
4년 전 기억이다. 지금 나는 편의점이 아닌, 치킨 집으로 향하고 있고, 초록병의 유혹은 더 이상 없다. ‘이제 곧 마칠 남편의 야식을 준비해 놓아야지. 치킨 냄새에 행복해할 남편을 기다려야지.’ 이런 기다림이,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진정한 행복임을 느낀다.
투명한 초록병 대신 탄산이 톡톡 첨가되어 더 청량한 탄산수를 잡았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버전의 엄마, 아내로 살아가는 지금이 가장 좋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4년을 보냈다.
하지만 유혹이 없을 순 없다. 집 앞 횟집을 지나가며, 무더운 여름 치킨과 생맥주를 곁들이는 사람들을 보며 멍해지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그 씁쓸하고도 뜨거운 무언가가 내 목젖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셨다. 탄산수. 이것이 무거웠던 날의 소주가 되어 주었고, 가벼운 날의 맥주가 되어 주었고, 특별한 날의 소맥이 되어 주었다.
언제든 가족 앞에서 당당히 마실 수 있는 탄산수. 카운터에서 계산할 때 이런저런 핑계를 주저리주저리 말하지 않아도 되는 탄산수. 동네 사람들의 눈에 들켜도 좋을 그 탄산수를 나는 마신다. 무겁게 빈 병이 쌓일 때쯤 수레에 한가득 실어 슈퍼로 끌고 가는 수고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쨍그랑 쨍그랑 “ 누가 들을까 봐 소리를 잠재우며 천천히, 천천히. 슈퍼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빈 병 들고 왔어요”라고 말하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소주가 주던 알싸한 마취 효과 대신, 탄산수는 나에게 맑은 정신으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준다. 감추지 않아도 되는 투명한 탄산수 같은 삶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