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을 12,000원에 팔았다

곰팡이 핀 마음을 닦아내는 일

by 주현정

‘다닥다닥.’ 좀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왜였을까?


18평 쓰리룸, 4인 가족. 답답했다. 물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만 갔다. 책을 쌓았고 옷을 쌓았다. 창고 하나 없던 집이라 계절마다 꺼내야 하는 선풍기와 온풍기는 늘 검은 비닐에 싸여 있었고, 옷장이 부족했던 탓에 옷들도 커다란 비닐봉지 신세를 피할 길이 없었다. 공기가 통하지 못하는 구석마다 곰팡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도 늘 헉헉거렸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삶이 힘들어서, 생애 처음 맡은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버거워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저런 이유로 내 몸과 정신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검은 봉지를 풀어야 했다. 두려움이 앞섰다. ‘혹시 좀벌레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곰팡이가 피지는 않았을까?’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레 봉지를 풀고, 겨우 옷걸이에 이번 계절의 옷들을 걸었다. 그리고 내년에나 만날 옷들은 다시 그 봉지 속에 넣어 구석에 쌓았다. 1층, 2층, 3층…. 높이 쌓여만 가는 검은 봉지들. 방법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계속 자랐고, 새로운 옷들은 ‘선물’ 혹은 ‘나눔’이라는 얼굴을 하고 끊임없이 밀려왔다. “이거 버리기 아까운데 둘째 입힐래?” 언제 입을지도 모를 큰 옷들을 받아오기 시작하자 짐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언제 읽을지 모르는 책들도 쌓여갔다. 손이 큰 남편은 ‘1+1’, ‘2+1’ 상품이 저렴하다며 생필품을 쟁여놓기 일쑤였다. 거실 겸 부엌은 물건들로 점령당했다. 커다란 간장, 스파게티 소스, 올리브오일…. 이 모든 것들은 세트를 지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다. 수납장은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어차피 먹을 것이니까 미리 싸게 사두면 이득이라는 남편을 말릴 길이 없었다.


좁디좁은 전셋집에서 내가 머물 공간은 점점 사라졌다. 아이들이 마음껏 뒹굴 수 있는 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우리 서서 자겠어.” 위기감이 엄습했다.


가장 먼저 거절을 배워야 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볼게.”, “육아용품은 집이 좁아 수용할 수 없으니 대여해서 쓸게.” 친구들의 다정한 배려를 두 손 들어 막아야 했다. 다행히 주민센터에서 장난감과 육아용품을 저렴하게 빌려주었고, 딱 2~3주만 사용하고 반납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집에 새로운 장난감이 들어와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곧 사라질 물건들이었으니까.


나눔이라는 이름의 짐들을 단호히 거절하며 조금씩 비워나갔다. 육아용품을 대여하는 것만으로도 집은 한결 숨통이 트였다. 책더미가 사라지니 거실이 넓어졌다. 계절마다 반복하던 옷 쇼핑도 멈추었다. 매일 입는 옷은 가진 옷의 20%뿐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살 빠지면 입어야지’, ‘유행은 돌고 도니까’라며 붙들고 있던 수많은 합리화를 잘라내고 옷장을 비웠다.


더 이상 검은 봉지 속의 좀벌레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365일 비염을 달고 사는 가족이 곰팡이에게 공격받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결혼 전 입던 옷, 일할 때 입던 블라우스, 유행 지난 청바지와 코트 수십 벌을 정리했다. 헌 옷 수거 트럭을 불렀다. 20kg에 5,000원. 그날 내 손에 쥐어진 돈은 고작 12,000원이었다. 아끼고 아껴서 검은 봉지에 ‘언젠가 입겠지’ 하며 모셔두었던 나의 20대가 헌 옷 수거함의 저울 위에서 달랑 12,000원짜리 영수증으로 변했다.


옷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숨어 있던 곰팡이들이 흉측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행거 바로 앞에 놓인 세 살 딸아이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재웠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밀려왔다. 천장까지 새카맣게 타고 올라간 곰팡이가 아이의 폐를 공격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 번에 싹 없앨 수 있어요.” 강력한 제거액을 샀다. 나와 아이는 하루 종일 밖을 전전했고, 남편은 마스크를 쓴 채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제는 개업 선물이나 공짜 물건을 사양한다. 쓰지 않고 쌓아두던 에어프라이어와 커피 포트는 당근마켓에 팔았다. 모든 물건이 살아 숨 쉬기 시작하자, 나도 숨이 쉬어졌다. 공간이 생기니 아이들과 마음껏 뒹굴 수 있었다. 사재기를 멈추니 마음의 화도 가라앉았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던 이유를 이제야 찾은 것이다.


1+1 상품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삶. 계절마다 옷 보따리와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 내 시선이 닿는 모든 물건이 제 기능을 하며 함께 숨 쉬는 이 공간이, 바로 나 자신임을 이제는 안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숨을 쉬기 시작하자,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덕지덕지 쌓인 거울을 닦아내자 그 속에 있던 내가 비로소 보였다. 곰팡이 뒤에 숨어 있던 것은 벽지가 아니라,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이 막혀가던 '나'였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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