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라는 감옥에서 석방되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평균의 범주 안에 구겨 넣으려 했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시원하게 밝혀 보려 한다. 나의 키를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나를 만나는 대부분이 느끼는 궁금증. 단연코 나의 키일 것이다. 느닷없이 묻는 무례한 이들도 있고, 아주 뜸을 들이다가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며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개중에는 내 키가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보이는 고마운 친구들도 있지만, 90% 이상의 시선은 여전히 내 키에 머문다.
"아, 네. 170 좀 넘습니다." 하며 능구렁이처럼 넘기길 40년. 단 한 번도 정확한 수치를 밝힌 적이 없었다. "180이 좀 안 됩니다"라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지만, 내 입에서 그 숫자를 꺼내는 것은 결코 안 될 말이었다. 개그우먼 장도연 씨가 자신의 키를 '2미터가 좀 안 된다'고 말했을 때의 그 통쾌함이라니! 내가 딱 그 심정이었으니까. 하지만 키를 유머로 승화시키기에 내 안의 작디작은 아이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저 내 키를 정확히 모르는 척하며 살아왔다. 신체검사 시간엔 조금이라도 작게 나오려고 목을 자라처럼 집어넣는 법을 터득했고, 덕분에 등은 나의 간절한 바람대로 점점 굽어갔다.
생리가 시작되면 성장이 멈춘다는 말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170cm였던 키는 고등학생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자랐다. 모든 학생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신체검사대 위에 올라갈 때면 정말이지 숨고만 싶었다. 제발 1cm라도 작게 나오길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기록된 숫자가 176cm. 내 고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를 장식한 숫자였다. 그 이후로도 내 키는 자랐겠지만, 부단한 나의 노력으로 그 숫자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조금 더 구기고, 접고, 움츠리며 말이다. 내 인생의 콤플렉스 중 으뜸은 단연 이 숫자였다.
나를 만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이제 더 크면 안 된다"며 내 키를 타일렀다. "큰일이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염려했던 걸까? 아니면 마음속에 떠오른 말을 참지 못하는, 자칭 '솔직한' 사람이었을 뿐일까? 알 길은 없지만 그들의 눈에 "아이고, 저 아이를 어쩌나" 하는 측은함이 서려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내 키를 평생 죄처럼 숨기며 살았다. 들키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 숫자를 꼭꼭 감춰두었다. 바꿀 수 없는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실례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춘기 소녀였던 나는 스스로를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무례한 말들을 견뎌야 했다.
임신을 했을 때, 역설적으로 굽었던 허리가 펴졌다. 서류에 '179'라는 숫자가 선명히 찍히고 말았다. 평생 염려해 마지않던 순간이었다. 누구에게 들킬세라 황급히 서류를 가렸다. 간호사조차 의아한 듯 내 키를 다시 확인했고, 나는 타오르는 얼굴을 숨겨야 했다. 그 숫자는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했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등이 굽어 177cm로 돌아왔을 때,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며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 그 숫자가 딸아이에게로 옮겨갔다.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자꾸 살이 빠져 보인다는 말을 듣는 건, 아마 몸의 무게가 '길이'로 자라고 있기 때문일 테다.
“와, 딸이 키가 크네요. 반에서 제일 크죠?”
“아마 그럴 거예요.”
나는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며 위풍당당하게 대답한다. “제 딸이니까요.” 그러면 십중팔구 “역시 우월한 유전자는 속일 수 없네요”라는 감탄이 돌아온다.
“엄마, 반 친구들이 롤링페이퍼 적어줬어요.”
친구들이 딸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장점을 적으라는 칸에 압도적으로 많이 적힌 말은 역시나 "키가 크다"였다. 착하다, 예쁘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은 소수였다. 웃음이 났다. 그 엄마에 그 딸이지 싶으면서도, 친구들이 키를 '장점'으로 적어주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에게는 족쇄였던 숫자가 딸에게는 훈장이 되는 것을 보며, 세상이 변한 것인지 나의 마음이 변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 거죽이 무엇이라고, 타인의 시선이 무엇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옥죄며 살았을까. 그 몇 센티미터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라고 이 보물을 꼭꼭 숨기고 살았을까. 당당히 고개를 드니 이토록 홀가분한 것을. 이 숫자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데 40년이나 걸린 걸까.
지금도 내 키를 궁금해 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키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던 나는 더 이상 없다. 나는 당당히 가슴을 펴고 나를 더 크게 만들며 보란 듯이 말한다.
“179cm입니다. 아마 댁에 계신 신랑분보다 제가 더 클걸요? 위쪽의 맑은 공기가 참 좋습니다.”
그러면 상대는 “맞아요, 우리 남편보다 크신 것 같아요”라며 유쾌하게 웃는다.
꺼내고 보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오직 나만을 옥죄던 그 숫자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이 큰 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나 가지지 못한 이 특별한 키를, 누구나 한 번 보면 기억해 주는 이 키를 이용해, 키만큼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세상에 알리는 사람이 되려 한다.
정수리에서부터 자란다는 흰머리를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혹시 주위에 아주아주 키 큰 여자가 지나간다면, 그래서 그녀의 키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라면 참지 말고 물어보라. 다만 무례한 염려 대신 이렇게 물어봐 주길.
“그 위쪽의 공기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