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나를 지우지만, 글은 나를 선명하게 만든다

오늘의 체인을 연결합니다

by 주현정

“술이라는 지우개 대신, 나는 글이라는 연필을 쥐기로 했다.”


새벽 5시 45분, 눈앞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와이퍼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날은 ‘인지상정’의 유혹에 몸을 맡겨야 한다고.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라면 한 그릇 끓여 먹고, 거기에 딱 한 잔만 곁들이면 완벽할 것 같은 아침. 비는 왜 금주 4년 차인 나를 이토록 집요하게 흔드는 걸까. 하지만 나는 핸들을 꺾지 않았다. 이불의 포근함 대신 요가 매트의 뻐근함을 선택하러 가는 길, 내 안의 체인을 끊어내지 않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비도 오고 진짜 일어나기 싫더라고요. 그런데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너무 쉽게 무너질까 봐 억지로 왔어요. 막상 오니까 이렇게 좋은데, 아침엔 늘 갈등이 생겨요.”

요가원에서 만난 동료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눈은 왜 또 그렇게 커지는 건지. 그 어떤 말보다 격렬한 맞장구를 쳤다.


새벽 5시 30분,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벌떡’ 하고 일어나지 않으면 끝이라는 걸 나는 안다.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에 침투하는 순간, 삽시간에 내 몸을 결박할 엄청난 핑계들이 떠오를 것을 알기에 소리와 동시에 몸을 일으켜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1분만 더, 딱 1분만 더’를 시전 하며 남편이 끌고 간 이불 끝을 잡아당겼다. 그 포근함 속으로 몸을 구겨 넣으니 ‘이 맛에 늦잠 자는 거지’ 싶었다. 그렇게 5분이 지났을까. ‘더 이상은 안 돼.’ 이불을 박차고 나와야만 했다. 나 자신에게 더 이상의 유예 시간을 주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흐느적거리며 눈을 감은 채 이를 닦았다. 안간힘을 다해 잠의 꼬리를 잘라냈다. 유산균과 미온수 500ml를 챙겨 먹고, 어제 미리 준비해 소파 위에 얹어둔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운동화만 신으면 끝이다. 거기까지가 내가 해야 할 전부다.’ 주문을 외우며 집을 나섰다.

몸이 찌뿌둥했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불속에 있고 싶은 이유가 다 있었네’ 싶었다. 우리는 왜 밖의 상황을 모르면서도 비가 오는 아침이면 이상하리만치 몸이 무거워지는 걸까? 속으로 수없이 물으며 요가원에 도착했다.

이런 날은 십중팔구 사람들이 적게 온다. 날씨가 사람을 이렇게 조정하다니. 오붓하게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 같은 반 친구가 말했다. 한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까 봐 무서워서 계속 오게 된다고. 나랑 똑같은 이유였다. 맞아요, 정말 맞아요. 우리는 서로의 두려움에 깊게 공명했다.


하루 한 편의 글쓰기를 지키려고 애쓴다. 쓰지 못할 핑계들은 늘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컴퓨터 앞에 앉으려 한다. 내 속을 꺼내 마음껏 펼쳐내는 이 시간이 내게 주는 명료함을 알기 때문이다. 아침에 쓰지 못했다면 오후에라도 기어이 쓴다.


‘이렇게 꾸역꾸역 쓰는 게 맞을까? 글감도 없는데 뭘 적어.’ 싶다가도 생각 속에만 가뒀던 것들을 꺼내 놓고 멀리서 바라보는 맛이 좋다. 답답했던 마음을 적으며 나의 진짜 생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제는 점쟁이가 필요 없을 만큼 앞으로가 보이기도 한다.


과거가 치유되는 경험은 숱하게 했다. 술에만 의지해 살아가던 나를 직시하고 받아들였으며, 환경 탓만 하던 과거의 삶이 한 장의 행복한 추억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부모의 부재와 쌀독이 비었을 때의 비참함 속에서도 우리 형제의 미소를 보았고, 원망만 하던 부모님의 고단함을 이해하게 됐다. 그러니 이 좋은 글쓰기를 안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침, 둘째의 등원 차량을 기다리며 오늘 운동 갔느냐고 묻는 친구. ‘이런 날은 안 가는 게 인지상정이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날도 흐리고 이불속에서 뒹굴기 딱 좋은 날 아니냐는 말. 맞다, 너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연결해 둔 ‘체인’이 아까워서라도 오늘의 연결고리를 놓칠 수 없다. 그것이 끊어지면 그냥 다시 ‘0’이 될 것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멈추지 못한다.


100점이 아니어도 괜찮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지 않을까. 비 오는 날의 요가 매트와 빈 모니터 앞의 막연함은, 결과물이 아니라 ‘나와의 약속’을 지켜낸 숭고한 의식일 테다.


딱 한 잔만 하고 싶은 날이 왜 없겠는가! 지금은 고작 오전 9시 30분이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술 한 잔이 간절한 사건들은 수없이 일어났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딸들을 닦달하며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내는 전쟁터에서 말이다.


“씻자” 소리를 백 번쯤 반복해야 하고, 알레르기가 심한 둘째는 오물오물 잘도 씹던 계란을 재채기와 함께 내 면전에 쏟아냈다. 걸레를 집어 들고 허탈한 웃음이 났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저 닦는 수밖에.


남들이 다 하는 ‘인지상정’ 대신, 내 마음이 정한 ‘의지’를 따랐을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좋아서 나는 오늘도 체인 하나를 놓지 못한다. 폭풍 같은 일상 속에서 '나'라는 섬으로 돌아오는 유일한 항로임을 알기에.


술이라는 지우개 대신 글이라는 연필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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