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납작한 자세로 사랑을 고백하는 법
삐삐삑. 서둘러야 한다. 급하다. 더 구기고 더 접어야 한다. 들키면 끝이다.
남들보다 한 뼘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지만, 집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납작해져야 하는 나. “엄마, 어딨어요? 또 숨었어요?”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늘 재빠르게 몸을 숨긴다. 밖에서 힘들게 지냈을 내 가족을 웃으며 맞고 싶기에 그렇게 한다.
어떤 날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또 어떤 날은 화장실에서 급하게 일을 치르다 말고 숨기도 한다. 단번에 발견되기도 하고, ‘왜 이렇게 못 찾나’ 싶어 쥐가 나는 다리를 주무르며 인내할 때도 있다.
같은 구조의 집 안에서 매번 새로운 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한된 공간 속에 남들보다 긴 팔다리를 꾸역꾸역 접어 넣는 것은 상당한 기술을 요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략 10년의 경력을 가진 나는 이제 ‘숨바꼭질 베테랑’이 되었다.
처음 신혼 때는 남편을 위해 숨었다. 그렇게 찾아낸 나를 보며 그가 웃어주길 바랐다. “또 숨었어? 이젠 다 알아. 여기 있네.”
안방 문을 지그시 눌러버리는 남편. 다 들킨 줄 알면서도 그 뒤에서 더 까치발을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나. 애쓰는 내가 귀여운 건지, 아니면 커다란 몸을 꾸역꾸역 구기는 게 웃긴 건지, 남편은 늘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마 그 얼굴이 좋아서 내 숨바꼭질이 습관이 되었나 보다 싶다.
장소가 식상해지면 화장실로, 세탁실로, 그것마저도 들키면 소파 옆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몸을 최대한 숙였다. 그렇게 낮은 자세로 수그리면 평소엔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잃어버렸던 풀, 가위, 머리끈 같은 것들이 소파 아래 뒹굴고 있었다. ‘옜다, 애쓴다’며 신이 나를 기특하게 여겨 주신 걸까? 숨바꼭질이 선물한 소소한 기쁨들이었다.
지금은 그 대상이 세 명으로 늘었다. 다행히 집 평수가 넓어져 숨을 공간이 많아졌고, 같은 공간이라도 더 잘 숨는 법을 터득했다. 이제는 가족들이 나를 쉽게 찾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떤 날은 “에잇, 못 찾겠다. 선아, 우리 엄마 찾지 말자!” 하며 5분이 넘도록 숨어 있던 나를 허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또 어떠랴. 몰래 뒤를 쫓아가 ‘웍!’ 하고 놀래키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을. “엄마, 놀랐잖아요! 대체 어디 숨어 있었어요?”
아직 잠들기 전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시간을 좋아하는 딸들 덕분에 내 동화 구연 솜씨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한 번은 물에 빠져 입이 얼어버린 남자의 성대모사를 하다가 모두가 빵 터지고 말았다. “곤주닌, 므안하니다(공주님, 미안합니다).”
물에 빠지는 바람에 옆에 있던 공주님께 물이 튀어 사과하는 장면이었다. 우리는 그 ‘곤주닌, 므안하니다’라는 말에 푹 빠져버렸다. 내가 “곤주닌!” 하고 운을 떼면 큰딸이 온갖 애교를 섞어 “므안하니다!”라고 화답하며 까르르 웃었다. “엄마 화났을 때 이거 써먹어 봐야지. 엄마는 이것만 하면 웃으니까.” 웃는 엄마가 좋은지 연신 ‘므안하니다’를 연발하는 딸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하루는 늘 그렇듯 문 뒤에서 쥐포처럼 내 몸을 최대한 납작하게 하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오가는 둘째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갈비뼈 사이사이의 공기까지 내뱉었다. 문과 벽 사이, 그 좁은 틈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나의 대기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큰딸은 들어오자마자 나를 찾을 생각도 않고 거실 한가운데서 외치는 게 아닌가. “므안하니다!”
그 순간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문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딸의 영리함에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딸에게는 분명 개그맨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확실하다.
물론 맥이 빠지는 날도 있다. 아무리 웃기려 해도 되지 않는 날. 가족들이 밖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핏기 없는 얼굴로 들어오는 날을 수없이 마주했다. 울며 집으로 들어오는 딸을 보듬어야 했고, 들어오자마자 쏟아내는 둘째의 속상한 하소연을 묵묵히 다독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문 뒤에서 쥐포가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한 번 웃고 나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그 진부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나는 오늘도 문 뒤에 납작하게 붙어 몸으로 쓰고 있다. 내일도 기꺼이 쥐포가 될 준비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