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행복일까

방황하는 시기, 고등학교 2학년

by 서현


오늘, 아니 실은 어제부터 나의 방황기를 보내기 시작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기말고사에 대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려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더 나은 내 모습을 그려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온전히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을 때, 이 생각의 실상은 완전히 틀어진 반직선과도 같았다. 나아가려다 애매하게 끊어졌을뿐더러 기존의 위치를 벗어난 바로 그런 상태 말이다.


나 자신이 조금 더 나은 모습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에서 내 본질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더 나아질 것이다 라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준점이 너무도 높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완전히 무시한 채 상대적인 점수를 매기는 식의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무시라는 것에 대해 각가지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무시라는 단어를 내 자신과 남을 분리해서 바라보았을 때의 무관심이라고 정리했다.


이러한 이기적인 생각들은 다 학교의 영향 때문이다라고 치부하기엔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솔직한 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고 감춤으로써 오히려 역으로 내 자신을 끊임없이 속이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학생으로서 느껴왔던 배움의 즐거움, 본질을 스스로 뿌리치는 격이 되어버렸다. 내 자신에게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었다.


일요일 저녁, 기숙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빠와 함께 이런 불안한 심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순간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얼마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 곳으로만 집중되어있었고 내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는 착각 속에서 끊임없이 남들만을 바라보며 지난 날을 보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좁디 좁은 마음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수치스러웠으며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느꼈지만 여기서 생각을 그치진 않았다. 이러한 과정조차도 내겐 행운이자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옆에서 나를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지지해준 아빠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것이 아닌, 외부 환경으로 탓을 돌리며 일시적인 믿음만을 만들어주는 그런 방식이 아닌 오로지 내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유도하는 그런 지지 말이다.


내 마음이 놓치고 있었던 첫번째 키워드는 감사함이었다. 감사함은 인생의 진리와도 같은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감사함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까지 미칠 수 있어, 마음의 평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절대적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 바로 시간이다. 개개인에게 주어진 같은 양의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값지며 유동적이지 않다. 환경은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불평등하게 주어질 수 없는 절대적 자산과도 같다.

나는 이런 시간의 개념과 우리가 나눈 대화를 서로 연결지으며 마음의 자세라는 것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사람의 모든 외적, 내적인 것들을 바꿀 수 있는지 다시 되돌아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흐트러진 마음 상태의 원인은 그런 유동적인 사고에서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이었다.

남보다 잘나기를 바라고 잠깐이라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일 때 느껴지는 후회와 좌절이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시작된 생각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많은 학생들이 접하고 있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도 약육강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우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반하는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 왜냐, 우상이 되기 위해 공부한다는 목적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거부감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 미리 언급했다 싶이 나 조차도 내 자신을 확실히 믿지 않는다. 끊임없이 장벽을 치며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 새로운 마음을 심는 것이 인간이 하는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며 이를 계속 반복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본질적 목적,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찌보면 스트레스와 같이 부정적인 반응에 대항하기 위한 원초적 본능이 우리를 그렇게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넘어서 그 과정의 큰 테두리를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꽤 기분이 찝찝할 만한 그 목적(우상이 되기 위해 공부한다는)은 실은 우리의 본성이다. 그 말은 바로, 이마저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스트레스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사고의 확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또, 아빠와 함께 나눈 이야기에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다시 언급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와 같이 극명히 대비되는 현상은 존재하지만 과연 정말 이 둘은 분리된 것일까? 상대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른지를 절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다 돌고 돌아 입장의 모호한 차이가 난다는 거시다. 순환이라는 것은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 무한함을 가지고 있다. 무한함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내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의식적으로 내 자신을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상대평가를 내리며 무엇이 더 나은가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둠으로써 자신의 한계점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를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깨닫는 것부터가 배움으로 향하는 첫번째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온 감각이 다 동원된 입체적 경험을 한 상태에서 우리는 더 그 깨닮음에 대한 가치를 높게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아까 언급했던 이분법적 사고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


남과 비교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또 다른 관점으로도 바라본다면 (결국 다 비슷한 주장이기도 하지만) 남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에 대해 반박할 여지를 두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더 나아가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이에 대한 강한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즉, 집착이 너무 강했다는 것이다. 내 능력부족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자세가 부족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인지 역발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등수를 매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빠가 나를 관찰해온 과정을 바탕으로 첫번째로 지적했던 점이었다. 반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한 사실이었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자신을 다시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도무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받아들인 후 변화한 생각의 방향은 아까 언급했던 이분법적 사고를 의식하는 것이었다. 나와 상대를 분리시켜 바라보는 것이 상대의 행복을 자신의 불행으로 인식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아빠는 이것을 가장 강조했고 나 또한 크게 동의했다. 상대와 나는 결코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상대는 나의 부분과 같고 그들의 생각이 결국 나의 생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닌 아닌 성인들이 하나같이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에 벗어날 필요가 있다. 행복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상대와 나를 동일시 함으로서 비로소 자신에 대한 믿음, 사랑이 실천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의식을 통해 상대를 짓밟는 것은 자신을 짓밟는 것과 같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이를 쉽사리 시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남과 함께 가라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학생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의식의 변화만이 아닌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라고 생각하였다.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 역시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여유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왜 노력이라고 마무리한 이유는 그 누구도 완벽하게 성숙한 마음을 죽기 전까지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를 깨달은 뒤의 기쁨을 당장 느낄지는 몰라도 이를 평생 유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의 자세는 끊임없는 도전과 역경을 통해 단련되어 가는 것이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다시 이기적인 마음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에 집중하는 즉, 감사함을 가질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지속해서 실천해나간다면 그 무엇이든지 좋은 결과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행복을 찾을 권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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