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풍 편지】 ‘가을이 온다’

by 박대영


해가 산모퉁이를 돌아 이울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선선한 바람 속에서 깨닫습니다. 또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어느 이른 봄 꽃망울 부풀던 그때처럼, 햇빛 한 줌, 비 한 줄기에 녹음이 짙어지던 그 푸른 날의 숲처럼, 산을 내려온 단풍이 수줍게 물들어가던 그 조용하던 아침처럼, 간밤에 소리도 없이 내리며 쌓이던 그 빛나던 눈의 아스라한 떨림처럼 변화는 늘 소리도 없이, 기척도 없이 찾아오나 봅니다.


자연은 때가 되면 새로운 것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늘 ‘스스로 그러하듯이’ 조용히, 하지만 꽤나 바쁘게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요. 새로운 조건과 새로운 풍경이라는 다음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그래서 늘 분주합니다. 자연에게 변화란 제 존재 이유이면서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가고, 세월이 이울고, 그래서 또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음을, 중년의 그가 깨닫습니다. 시간의 배에 태워진 채로 이리저리 떠밀리어가는 ‘나이듦’을 떠올리고만 것이지요. 계절의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그 속에 담긴 시간의 흐름이, 그 어쩔 수 없음이, 딴에는 야속했나 봅니다.


하지만 안타까워만 하기에는 흐르는 시간은 그 자체로 절박하고, 가슴 아래께가 따가워지는 그 무엇이기도 합니다. 틀어놓은 수돗물이 맥없이 하수구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듯,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지 조바심이 나니 말입니다.


그래서 목이 메게 아쉬웠던 그 시간들을 보내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한결같이, 늘 게으름을 탓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덩달아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나 자신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자책이면서,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천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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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살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옥죄던 삶의 바람이나 명제는 그대로인데, 더 잘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인 변화에는 둔감했으니, 산을 넘어온 바람과 함께 더불어 재잘거리는 자작나무의 맑은 속삭임이 가슴 한 켠을 꽤나 매몰차게 휘젓습니다. ‘풍족하게’가 아닌 ‘풍부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변화는 늘 필요한데도, 몸도, 마음도 마냥 그 자리에서 맴을 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새가 자신의 세계인 알을 깨고 나오듯,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는 헤세의 말이 아니라도 더 잘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은 과거의 못난 나와 결별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임에도 늘 그 변화가 두렵고, 또 어렵습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 역시 마찬가지인데도 말입니다.


모름지기 바람직한 변화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개척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당연히 스스로 하고자 했던, 바라던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되어야겠지요. 그 길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더러는 부정하고 파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옭아매는 수많은 아집과 무지의 끈을 끊어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세계를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방법이듯, 우리 역시 우리의 알을 깨고 나와야 더 크고, 밝은, 그래서 더 나은,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자의 알과 세계는 개별적이라 자기 자신만이 알겠지요. 분명한 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더욱 견고해진 알 속에 갇힐 위험이 더 크고, 그래서 알이라는 무지의 세계를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더 굳건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 보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집과 무지, 게으름, 그리고 미성숙이라는 알을 깨고 저 멀리 푸른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꼭 바라던 그곳이 아니더라도, 일단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하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들려주는 충고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간의 일은 제멋대로의 의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그리고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끝까지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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