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풍 편지】 ’바람‘에 대한 고찰

by 박대영

왜 ’바람풍 편지’냐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굳이, 하필이면, 왜 '바람풍'이냐고? 나름의 호기심이 있었던 거지요. 그러게요. 왜 바람풍일까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느 날 도보여행 모임에 가입하면서 ’바람‘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더랬습니다. 가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은, 안타깝게도 ’바람‘이라는 닉네임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사실… 흔히 말하는 이름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바꾼 것이 ’바람풍‘입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호응이 좋았습니다. 친근하고 외우기도 쉽다고요.

그럼, 왜 굳이, 하필이면 바람이냐? 고마(그냥, 갱상도 사투리) 바람이 좋았습니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는, 어쩌면 철없는 생각을 품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의 허랑방탕한 떠돌이 삶이 머가 좋다고… 여하튼 그랬습니다. 그래도 나름 바람을 규정하는 전범(典範)은 있었으니,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Suttanipāta)>에 나오는 그 바람이었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물에 걸리는 않는‘ 바람이 그 바람입니다. 그 바람은 먼저, 자유와 떠돎의 바람입니다. 바람은 본질적으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으면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존재이니까요. 그래서 바람은 그물이라는 ’구속‘에 붙들리지도,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요. 우리네 삶의 행복 같은, 또는 거창한 진리나 이상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소유하기보다는 그냥 두고 찬찬히 보고, 느껴야 하는 존재인 거지요. 뒤쫓는다고 결코 붙잡을 수는 없는 그런 존재….

흔히 우리네 인간의 삶은 사회적 질서나 관계, 욕망 같은 그물 속에 붙들린 채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숫타니파타>의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내면의 자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자유를 동경했었나 봅니다. 잡히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흘러가면서도 머무는 바람의 자유, 왠지 멋있지 않습니까?



그 바람이 산을 넘어와 자작나무 잎사귀를 흔듭니다. 바람이 불면 자작나무가 가장 먼저 아는 체를 하는 까닭이지요. 바람의 기척을 들으며 과연 나는 그 바람처럼 살고자 했던 것인가. 새로운 의문이 생깁니다.

사실 바람은 자유나 떠돎이라는 이미지 말고도 다양한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바람은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탓에 허무나 고독, 무상(無常)과 덧없음의 상징이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시간의 흐름이나 변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쉬는 ’숨‘도 바람이지요. 그래서 숨의 바람은 생명의 바람이면서, 생(生)을 유지하는 기본적 행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바람은 더러 악기를 만나면 음악이 되기도 하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는 소망과 욕망을 뜻하는 ’바라다‘의 바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숱한 ’바람‘ 속에서 꿈과 희망을 품으며 삶의 이유를 찾아가니까요. 그리고 ’변화의 바람‘ 같은 시대적 흐름을 나타내는 바람도 있습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디서 불어오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존재하는 신의 가호 내지 성령처럼, 바람 역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탓에 종교에서 말하는 존재의 불가해성(不可解性), 즉 신비를 나타내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람 잡다‘의 바람도 있군요. ’바람 잡다’는 ‘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겠다고 꾀는 짓’이니 절~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전적 의미 역시 ’다른 사람을 유혹하거나 설득하여 잘못된 길로 이끄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지요. ’바람잡이‘가 좋은 사람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알 아는 그 바람…. 흔들리며 요동치는 인간의 마음, 즉 욕망하는 마음도 바람입니다. 그 바람은 흔히 ’바람나다‘ 또는 ’바람피우다‘로 표현되지요. 그 어원은 ’욕심이 난다, 또는 욕망이 생긴다‘는 의미의 ’바람나다‘가 실제로 행동에 옮겨졌을 때, ’바람피우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바라는‘ 마음이 모여 그 결실(?)로 바람이 난 것이지요.



바람은 이토록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 많은 다의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크게 보면 결국 두 가지 의미로 수렴되지 않나 싶습니다. 자연적인 바람의 존재 방식인 떠돎이 그 하나요, 자연적인 바람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바라는‘ 그 마음이 또 하나인 거지요.

바람의 의미를 나열하다 보니, 나의 바람풍이 추구했던 바람의 가치가 무엇이었나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엔 자유와 떠돎…. 바로 이 가치로 귀결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모든 뿌리 있는 것들의 바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게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니 문제이지요. 바람도 나름 문제가 많거든요.


먼저, 바람은 뿌리가 없는 탓에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것이 허랑하다는 것입니다. 여행과 방랑의 차이가 돌아갈 곳의 유무(有無)에 있는 것처럼, 갈 곳 없이 온 세상을 떠도는 바람의 방랑은 아무래도 인간의 삶에는 좀 과해 보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큰 문제는 바람의 폭력성과 파괴적인 성질입니다. 돌풍, 태풍… 듣기만 해도 느낌이 팍 오지 않나요? 그리고 바람은 형체가 없는 탓에 ’헛된‘ 노력이나 희망을 의미하기도 하니, 바람을 동경하고 좇는 일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는 양면의 가치가 있나 봅니다. 어느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지요. 그럼에도 바람은 바람이라, 바람풍에게는 늘 동경의 대상입니다. 자유와 떠돎, 그 속에 깃든 고독, 그리고 변화 의지, 게다가 적당한 허무까지… 하지만 바람의 부정적인 성격들은 늘 경계해야겠지만요. 아! '숨'이라는 바람도 잊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빗속을 건너온 바람이 또, 묻습니다. 그러더니 또 무심하고, 시크(?)한 모습으로 휙 지나가더니 어느새 앞산을 넘어가는 기척만 아스라합니다.


흔히 무언가를 구하거나 원할 때는, 그것이 부족하다는 징후라고 하지요. 그런데 어쩌면 부족한 것에 대한 갈증이, 또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연모(戀慕)와 동경(憧憬)이라는 노력형(?) 단어를 떠올리고, 그 단어의 결말이 궁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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