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당 삼대 모녀의 발리 한달 살기
2020.01.06
차가운 바람이 쌩하게 불던 2020년 1월 한겨울.
나이가 제각각인 얇은 패딩 차림의 여자 셋은 ktx 부산역 앞에 모였다.
등장인물
여자1. 60대여성, 소피의 할머니 최여사, 통장 14년차로 동네 마당발.
여자2. 30대여성, 소피의 엄마 보보, 최근 육아를 위해 남편이 일하는 중소도시로 이주하며 휴직상태.
여자3. 8세여아, 소피 대도시에서 일하는 엄마와 할머니 손에 크다가 최근 아빠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신이 난 상태.
“최여사, 최대한 따듯하면서 얇은 패딩으로 입고 오랬자나! 캐리어에 넣으려면 공간이 없어.”
“아휴, 이게 젤 얇은거야!”
“할모니, 엄마! 기차에서는 쉿! 쉿!”
소피의 한달 영어캠프를 핑계로 발리에서 한달 살기를 위해 모인 삼대 모녀는
이 여행이 앞으로 한동안 가지 못할 마지막 여행인지도 모르고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전세계를 뒤흔든 판데믹, 코로나 발발 바로 직전,
우리 삼대 모녀가 발리에서 한달을 지지고 볶고 살고 온 이야기의 시작이다.
한동안 일에 지쳐 번아웃이 온 엄마 보보는 2019년 10월 블로그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발리에서 진행하는 사립 영어캠프를 예약하고, 숙소 역시 발리에서 살고 있는 캠프 주최자를 통해서 번개에 콩 구워먹듯이 2 room 아파트를 3주간 예약을 했다.
나 혼자의 힘으로 발리의 수도 사누르 안에 있는 풀빌라를 예약해 보고자 했으나, 애매한 1달이란 장기렌트에 대해서는 답이 오는 부동산업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겉은 너무도 아름다웠는데,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때 개미떼들이 자리잡고 반겨주었던 그 추억의 발리 숙소…
이 숙소에서 첫날 아침의 눈부심을 보라!
하지만 숙소 안은...(할많하않,,,나중에 계속)
이 숙소를 처음 봤을 때 나의 마음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소개팅의 그녀가 알고보니 지독한 발냄새와 무좀이 있었던 걸 알게 되버린
남자의 심정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말만 통하는 실전 영어로 관리자와의 끊임없는 의견 교환을 해서 개미를 최대한 일망 타진시키고, 강인한 한국 여성 3인방은 꿋꿋하게 숙소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음편에 내용 계속됨)
이 숙소에서 3주 그리고 발리의 한달살기 나머지 1주는 뒤에 합류할 남편과 여행을 위한 호텔 숙소로 예약하여 무비자 기간 30일을 꽉꽉 채워놓았다.
오늘은 발리 여행의 첫날 첫시작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ktx를 타고 인천 제2공항 주변 호텔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뜨는 발리행 비행기를 타기위해서 전날 인천공항 근처숙소를 예약했다.
여행을 가기 전 설렘은 60대나 8세나 똑같은가보다.
여행전날 호텔 침대에 나란히 누운 최여사와 소피는 신난 목소리로 발리에 가면 무얼 할지 떠들고 있었다.
그에 반해 MBTI 3번해도 3번다 ENTJ가 나오는 전형적인 계획형 인간인 나 보보의 머리는 당시 꽤나 복잡했다. 패키지 여행도 아니고 짧은 여행도 아닌데 다가 한달간 외국에서 살아보는 건 나도 처음.
설레임보다는 낮선 외국에서 저 두 여자(아이와 중장년의 여성)를 잘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침대밑으로 꺼질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어느샌가 잠이 든 최여사와 소피 둘의 쌕쌕 소리를 들은 후에도
나는 엑셀과 구글 지도 정리해 놓은 곳을 다시 한번 살피고,
이미 10번을 본 KLOOK이라는 여행예약사이트에서 예약해 놓은 USIM과 숙소로 우리를 랜딩해주는 차량서비스의 내용을 살피며 다시 한번 어떻게 공항에서 그들을 찾을 수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절대 실수하면 안돼! 외국땅에서 엄마랑 소피를 고생시킬 수 없어!’
이렇게 되뇌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아니야! 나자신아! 매번 이렇게 철저하게 일하다가 지쳐서 번아웃이 와서 가는 여행인 거 잊었어?
왜 또 일하듯이 하는 거야? 여행인데 실수 좀 하면 어때? 누가 죽는 문제도 아니잖아!’
순간 머리에 종이 땡하고 쳤다.
맞아! 쉬려고 좋은 추억쌓으려고 가는 여행인데!
계획대로 안된다고 인상쓰고 즐기지도 못하면 엄마와 소피도 불편할 거야!
이까지 생각이 들자, 내일일은 내일 고민하자! 외치고 눈을 감았다.
얼핏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어느새 새벽 6시.
부지런한 최여사는 벌써 일어나서 준비해 놓은 도시락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 소피 뭐라도 먹고 가야지”
나는 약간 짜증을 담아서 얘기했다.
“엄마! 공항 가서 먹자니깐!”
“아휴! 애 배곯는다!”
눈을 부비며 일어난 소피는 외친다.
“할모니 나 배불러! 먹기싫어!”
내가 준비하는 동안 어떻게라도 김밥하나 소피 입에 넣고 만족한 최여사는 머리에 감은 롤을 풀기 시작했다.
“아, 진짜! 어엄마!! 제발!! 공항 셔틀 먼저 가겠다! 서두르자!”
아버지가 정말 싫어하는 엄마의 코리안타임 발동!
부부 동반여행가서 모일때마다 제일 늦게 나가는 엄마 때문에 여행때마다 스트레스라는 우리 아부지.
문제는 나도 아버지랑 똑닮은 성격이라는 것.
발리에서도 한달간 최여사의 이 코리안 타임 때문에 얼마나 싸웠는지..
어찌저찌 서둘러 공항으로 가는 셔틀을 타니, 이제 진짜 한국을 떠나 발리로 떠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속까지 밟고 캐리어 짐을 붙이고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 했다.
최여사는 인천국제공항이 낮설고 신기한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자고 성화였다.
사진찍기 싫어하는 나는 투덜 투덜대며 겨우 한두개의 사진을 허락하였다.
이사진을 찍을 때 까지는 우리의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 여행이 순탄할 줄 알았는데..
삼모녀가 함께 하는 여행은 RPG게임처럼 곳곳에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앞으로 벌어질 최여사의 비행기 폭토사건부터 숙소의 개미떼의 역습, 낮선 곳에서 길잃음까지..
그때까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지.
그래도 이런 장애물도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는 발리에서 생긴일,
이 소중한 추억이 내 기억속에서 더 흐려지기 전에 나누어 보려고 한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한달 살기를 계획하는 그날을 그리며,
발리에서 생긴 일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