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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생각 Jul 12. 2022

감정의 캡슐: 동시대성

《언커머셜(UNCOMMERCIAL):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


    이 사진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의 감탄사들을 기억한다. 당시의 사회 흐름에서 느꼈던 이효리 민낯 화보의 가치는 전시장의 벽면 하나 이상의 아우라였다. 예술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며 나의 세계만큼 보인다. 빨간 명화책 속 파트를 가르는 페이지에 불과했던 마네의 그림을 15년 후 미술사 수업에서 만났을 때, 7살 아이의 눈에도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라는 것의 가치를 깨달았고 그때 닿은 전율은 인생 최고의 예술 경험이었다. 조선 후기 문학의 특징 땡땡! 하며 받아 적어 내린 건조한 문장들이 SMP를 찬양하는 트위터 주접문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문학시간에 조금 더 깨어있지 않았을까? 작품이 공개된 당시의 평가를 알고 있는 전시품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동시대 예술을 탐험하는 재미를 깨달았다.


김한용 특별전 B컷 모음


    중년을 넘긴 도슨트 님의 손바닥  노란 컨닝페이퍼엔 작가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전시 막바지라 종이는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많은 인원 때문이었는지 조금은 버거워보이셨다. 유익한 내용에 집중하며 전시 흐름을 따라가다 <김한용 특별전> 구역에 다다랐을 , 도슨트 님은 어느새 자연스럽고 활기찬 에너지를 뿜어내셨다. 60-80년대 스타들의 사진 앞에서 '여러분은  사람들 모르죠?' 하며 배우들의 이름을 자문자답, 하나하나 읊어주시는 들뜬 도슨트 님의 모습은 마치 엔시티와 세븐틴 멤버 이름 퀴즈를 내는  모습을 보는  했다.


  영화 포스터가 가득했던 4층에선 <지구를 지켜라>, <공동경비구역 JSA>등 좋아하는 작품들의 포스터를 만나 반가운 기분이었다. 그런데 왜 재생 버튼을 눌러본 적도 없는 <시>의 포스터를 볼 때 더 입체적인 기분이 들었을까? 동시대성. 길거리, 인터넷, 방송 등에서 스쳐간 마주침, 선명히 기억하는 떠들썩함이 배어 나오는 사진은 나의 선호도와 상관없이 향기가 났다. 우리는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 3년도 안 되는 날들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며, 추억팔이 콘텐츠는 주기적으로 인기를 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시절에 향수를 느낀다. 내가 이제 와서 60년대의 방송과 광고를 찾아본다 한들, 당대를 겪은 사람만큼의 벅참은 느낄 수 없다. 과거의 콘텐츠를 다시 접하는 건 이제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일상 속으로 날아들어갔던 콘텐츠의 부산물을 주워 담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동시간의 힘이다. 지금의 문화가 소중한 이유다.


    그렇지만 요즘 것들은 언제나 고상하지 못하다. 사실 일 년 전쯤, 나는 닳고 닳은 케이팝 꼰대가 되어 '요즘 케이팝'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요즘 케이팝'을 강제로 접하게 되었고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다시 아이돌로 채워지게 되었다..^^ 요즘 것들이 고상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요즘 것들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정반합의 반이 주는 충격과 합이 주는 완결성을 느끼기 위해선 정을 따라가고 있어야 한다. 흐름이 끊겼기에 요즘 것들이라는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흐름을 모르는 7살 아이의 눈에는 마네의 혁신도 이상한 페이지였을 뿐이었다.


 덩어리로 보였던 정 속에 들어가고 나면 그 안에 또 미세한 정반합의 흐름이 있다. 만약 내가 아이돌 4세대가 열리는 이 변혁의 시기를 실시간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게 후회된다. 숨듣명 콘서트엔 내가 덕질했던 가수들이 없었지만 나는 숨듣명 콘텐츠에 열광했다. 그저 흥얼거렸던 순간들이 증폭되어 내게 큰 두근거림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며 계속 무뎌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만끽하고 이 벅찬 기억을 수집해 놓아야 한다. 동시대 콘텐츠는 소중한 감정의 캡슐이다. 언젠가 탐험할 힘이 방전되었을 때, 흐름을 따라갈 수 없어졌을 때, 대중의 범위에서 소외되었을 때 꺼내 다시 나를 설렘으로 이끌 수 있는 소중한 캡슐. 백일섭 앞에서 편안해진 도슨트 님의 미소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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