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Spill The Feels> 리뷰: 투박한 키워드의 진심
사람을 설득하는 두가지 루트가 있다. 진심과 수사.
<흑백 요리사>의 요리사들이 본인의 캐릭터와 요리 철학을 설득시키는 방식도 그렇게 두가지로 나뉜다. 진심이 강한 '요리하는 또라이', 수사에 강한 '최현석', 양쪽 모두에 강한 '에드워드 리'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예술은 표현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영역이 크다. 특히 대중은 깊은 사유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문화는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수사가 있을 때 성공한다. K-Pop이 메인스트림이 된 이후 찾아온 이지리스닝의 시대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유다.
아무튼 내가 하려는 건 (또) 세븐틴 이야기다.
세븐틴은 몇 년 사이 킹갓제너럴 슈퍼스타가 되었다. 스타디움을 매진시키고 유수 페스티벌의 헤드-서브헤드라이너이며 세계에서 피지컬을 가장 잘 파는 가수. 그렇게 누구보다 팬들과의 유대가 자랑이었던 이들의 세계는 변해갔다. 바빠졌고, 이들을 만나기 위한 대기줄은 길어졌다. 변할 수 밖에 없었다. 더 넓은 시공을 포용하기 위해 세븐틴은 높은 별빛이 되어야 했고 팬들은 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세븐틴은 그게 마음에 걸렸던거다. <Face the sun> 이후, 세븐틴의 앨범은 ’지금의 세븐틴’을 기록하는 일기장이 되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픈 손오공, 10주년의 마에스트로 등 현재의 상황과 고민을 담아내는게 프로듀싱의 목적이 되었다. 그런 세븐틴의 마음에 지금 가장 크게 자리잡은 것은 속상해하는 팬들의 모습이었고, 그래서 이들은 <Spill the feels>에서 우리는 여전히 곁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모두가 원해, 사랑 돈 명예. But only want you
너 없이 빛나는 Fame 나는 원하지 않아. 너의 사랑 하나 그거면 돼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모든 이에게 쉽게 가닿지 않았다. '돈'과 '명예'라는 다듬어지지 않은 단어의 등장에 어떤 사람들은 당혹감과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세븐틴은 꼭 그걸 말해야했다. 그게 지금의 진심이니까.
세븐틴의 진심은 언제나 상황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한다. 팬들을 향한 여전한 마음을 전하려고 돌아보니 스스로도 많은 것이 변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돈과 명예를 잔뜩 가진 채로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것이 기만처럼 느껴졌을 터. 그래서 세븐틴은 그냥 인정해버렸다. 돈, 명예. 음악으로 말하기엔 조금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현실적으로 모두가, 그리고 우리가 좇고 있지만 그래도 그것보다 소중한게 있다고. 'Love, Money, Fame'이라는 투박한 키워드가 주는 이질감은 그들의 메시지와 아주 닿아있다. 조금 변하긴 했는데, 속물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텐데, 예전처럼 사랑 하나가 전부일 수는 없는데, 그치만, 그래도 당신들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솔직함으로.
나는 우지가 세련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지라는 창작자를 지켜보며 느낀 것은 그가 수사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게 아니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꾸밈 자체가 가치인 창작의 세계에서 좀 바보처럼 유치한 언어를 쓰는 아티스트. 진심이 왜곡될 여지를 줄 바엔 미사여구와 완곡함을 덜어내고 직구를 날려야만 완전함을 느끼는. 구성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중요한 게 많은. 그런 사람이기에 우지는 멋내지 않은 진심만으로 음악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예술은 표현의 층위를 즐기는 세계이다. 고민의 크기와 진심의 농도만으로 인정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진심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트레일러에서 밝혔듯 사람들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켜야한다는 무게를 지고 있다면 진심 몸통 박치기 만으로 뚫리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나는 이걸 우지가 평생의 숙제로 안고 갔으면 좋겠다. 자신이 가진 마음의 크기와 가치를 어떻게 하면 모두가 느낄 수 있을지 계속 계속 고민했으면 좋겠다. 계속 계속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내 의견에 코웃음을 치고 계속 몸통 박치기를 하든, 자신만의 담백한 문법을 찾아내든 계속 계속 노래를 만들어서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두가 알게 했으면 좋겠다. 이미 우지의 마음을 읽어낸 사람들은 이미 그의 곁에 있으니 더 적극적으로 탐험해보면 좋겠다. 샘플링에 대한 편견을 깨고 한 단계 성장했던 것처럼.
아무튼 ’Love, Money, Fame'은 잘나가는 슈퍼스타 오빠야들이 캐럿들의 서운하다는 문자 한 통에 뒤돌아 달려와서 너뿐이라고 달래주는 앨범이다. 메시지가 뚜렷한 타이틀곡과 <사탕>외의 나머지 곡들도 팬들의 사랑에 호소하는 내용만으로 가득차있다.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앨범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수사적인 측면에서는 계속 아쉬움이 남는다. 세븐틴의 사랑을 먹어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식용꽃을 좀 올려봐도 괜찮았을 텐데. 당신의 문법이 통하지 않는 다른 이들을 위해 다른 방식으로 포장해 보여줄 수는 없었던 건지 하는 아쉬움.
세븐틴의 변곡점이었던 <Attacca>가 세련미로 사람들을 휩쓸었던 것에 비해 전반적인 프로듀싱이 이와 멀어지면서 자꾸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나는 이들이 이해되고 상당 부분에 동의한다. 지금의 프로듀싱은 킹갓제너럴 슈퍼스타의 크기를 담기엔 다소 나이브하다.
그들은 사랑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세븐틴은 충분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얹는 부정적인 말들이 더욱 속상한 듯 하다. 음악에 담긴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예쁜건지 다들 느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부족한 수사가 계속 아쉽다. 내가 아무리 이 앨범 속 메시지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해도 그건 나의 몫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시키는 것에 실패한 건 세븐틴이기 때문에.
우리 사탕 같은 사랑해요 상처 뿐인 하루라도 한번은 웃을 수 있게요
우리 사탕 같은 사랑하며 사르르 녹아질래요? 어때요?
그대 맘을 다 가지고 싶다면 어린 맘인가요
논리와 수사의 미학을 즐기던 내가 어쩌다 이들에게 함락 당해버린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아쉬움 속에서도 이 앨범을 사랑하게 되었다. 조금은 멀리 와버린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볍게 달콤한 사탕같은 사랑을 하자고, 서로가 전부일 수는 없겠지만 그러고 싶은 어린 마음이라고 솔직하게 속삭이는 이 앨범을 나는 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미쉐린 3000 스타짜리 마음이라면 식용꽃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기도.
세븐틴 많이 사랑해주세용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