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셋을 벗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방금까지 뭐라고 떠들었던가? 한 시간 동안의 기억이 통째로 증발했다. 그 대신 손바닥에 식은땀만은 채 마르지 못했다. 새로운 경험이었음은 분명했지만 부족한 언변 실력을 잔뜩 드러냈음을 짐작게 했다. 더군다나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스튜디오를 떠나야 했으니 비어 있는 기억에는 낮아진 자존감만이 들어찼다. 호스트 분께서 주신 막대 과자를 우적이며 언변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곱씹어보았다. 다음 날 유명한 아나운서가 쓴 말하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집어 들었던 이유다. 발성연습부터 말하는 방식까지 이번 기회로 뜯어고칠 심산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녹음했던 팟캐스트가 업로드되었다. 얼마나 엉망일는지.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대었다. 시그널 음악과 함께 호스트 분들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여전히 부끄러운 나의 목소리, 근데 생각보다는 들어줄 만하지 않겠는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반대로 걱정이 크면 그만큼 쉽게 만족할 수 있는 모양이다. 공적인 통화를 녹음하거나 이런저런 콘텐츠에 출연하기를 꺼리지 않았기에 내 목소리를 듣는 일 자체에 거부감이 덜했다. 조금 더 솔직해져 보자면 몇 달 전 이 자리에서 일생 들었던 칭찬을 다 받은 뒤로 나의 목소리가 별로 거북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말하기 수업을 읽은 뒤라 수많은 개선점이 밟혔다. 일상에 가장 가까울 라디오 형식의 이 콘텐츠를 반면교사 삼아보자. 나는 오글거림을 용케 버티며 프로그램을 다시 재생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뉠 개선점을 정리하고 보니 마침 이 책 역시 3부로 나뉘어 있었다.
1부 이것만 바꾸면 당신의 말이 달라집니다 : 발음부터 제대로
내게 가장 시급한 건 기본적인 문제였다. 매가리가 부족한 목소리는 발성보다는 발음 탓이었다. 발음을 선명하게 내는 비법은 모음에 있다는 말을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았다. '잡식성 경청꾼'이라는 나의 닉네임을 실제로 발음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누가 불러 주어야 비로소 꽃이 될 이름이라면 피어나기에는 쉽지 않을 꽃이었다. 발음이 낯설 때면 해당 단어의 자음을 버린 뒤 '아이어 여여우'라고 한 번 발음해 보고 입 밖으로 내보란다. 혼자 중얼거려 보니 효과는 있다. 더불어 자기주장이 강한 구강구조 덕에 'ㅅ'발음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ㄴ'과 'ㄷ', 'ㅅ'이 같은 위치에서 발음 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잡닉넝, 잡딕덩을 발음한 뒤에 잡식성이라고 해보면 노홍철의 시그니처인 번데기는 저 멀리로 도망쳐 있으리라.
2부 이럴 땐 이렇게 말해보세요 : 질문으로 답하기
이쯤 호스트 분들께 고마워할 시간이다. 유려하게 흐르는 대화를 위해 끊이지 않아야 할 것은 굉장한 게 아니다. 책에서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대응하거나, 맥 커터가 되지 않기 위해 그에 알맞은 질문이 중요하다고 했다. 서로가 가진 단어들을 일종의 물로 비유한다면 질문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내는 일이다. 상대가 물살에 맘 편히 몸을 맡기려면 상당한 실력이 필요하다. 호스트 분들이 터준 물길에 신나 하는 나의 목소리가 이어폰 너머까지 전해졌다. 알고 보니 녹음을 마치고 땀에 전 손바닥은 몰아치는 수다의 급류가 휩쓸고 간 뒤에 남은 흔적이었다. 여기에서 부족한 면을 발견한다. 인터뷰이 입장이라는 한계는 있었겠지만 종종 질문으로 답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일직선으로 뻗치기보다는 구불구불한 강이 더 운치 있었을 텐데 말이다.
3부 당신의 태도가 말에 품격을 더합니다 : 경청을 방해하는 버릇
이금희 아나운서 역시 '우리 편하게 말해요'라는 책을 출간했었다. 그가 소개했던 말 잘하는 첫 번째 비법은 바로 잘 듣는 것이었다. '한국의 아나운서 다섯 명을 대시오!' 하면 대부분 떠올릴 인물이랄 만했다. 한석준 역시 이금희 아나운서가 아침마당에서 곧잘 하던 '네'의 중요성을 짚었다. 경청하는 태도는 중요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상대가 말할 때 '음, 어, 음.' 하며 추임새를 붙이는 나의 버릇을 방송을 듣기 전까지는 몰랐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있어요.'라는 표시였지만 제삼자 입장에서 들어보니 사뭇 거슬렸다. 그렇다고 상대가 말할 때마다 지금 내 리액션은 어떠냐는 질문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답을 내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의 리액션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이 외에도 말 끝에 물결표를 만들거나 웃음을 더하는 것부터, 충분하지 않은 어휘력까지 교정이 필요한 부분은 줄줄이 꾀었다. 적당히 하자. 문법나치와 다를 게 무언가? 언감생심 경청과 수용은 어제의 나에게도 필요하다. 부끄러운 과거는 지금의 교보재로써 충분히 의미가 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이 된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해 준 프로그램의 진행자 분들이 만들려던 것은 교보재 같은 게 아니리라. 시각장애인이 나를 리뷰하는 라디오, 줄여서 '시나리오'. 나의 일상을 기록해 준 소중한 각본을 다시 한번 펼쳐본다.
더듬거리더라도 괜찮다. 부족하면 또 어떤가? 미래의 내가 듣는 지금의 나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다음 주에는 서울 여행을 즐겼던 이야기가 업로드된다지? 그때는 지적할 거리를 잠시 내려두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