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 그곳의 밤은 나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낮에는 아버지로서 행복이와 함께 버킹엄 궁전 앞을 걸었고, 밤에는 혼자 게이 클럽의 문을 열었다. 서로 다른 두 장면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얼굴이었다.
Heaven에서 열린 K-pop 이벤트는 예상치 못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영국 사람들이 한국 노래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신기했고,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한국 문화가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이상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주변을 360도로 둘러싼 동양 여성들 사이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
아버지로 살아가는 날들은 늘 책임과 무게로 가득하다. 행복이의 일상을 챙기고,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히 한 명의 게이 남자다. 클럽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자유와 욕망을 느꼈다.
이 두 세계는 겉으로 보기엔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라는 정체성과 게이라는 정체성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를 완성하는 두 축이라는 것을. 낮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내가 있고, 밤에는 음악 속에서 나를 되찾는 내가 있다. 둘 다 진짜 나다.
런던의 밤은 그래서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넌 여전히 살아 있다. 게이 아버지로, 그리고 한 명의 나 자신으로.”
그렇게 쇼를 감상하고, 나는 2시가 되기 전에 클럽을 떠났다. 다음 날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음악과 열기가 넘쳤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충분하다고 느꼈다.
17년 전 같았으면 분명 새벽까지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아침 햇살에 젖은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흔여섯의 나는, 이제는 다음 날의 체력과 행복이를 생각한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둘은 다르지만, 모두 진짜 나였다. 젊은 시절에는 끝까지 놀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고, 지금은 멈출 줄 아는 여유가 있다. 런던의 밤은 그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나이 든다는 건 단순히 무엇을 못하게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즐길 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매 순간 소중하게 인생을 생각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