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이 출장에서 돌아온 날, 우리는 오랜만에 멜버른의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며 천천히 걸었다. 서로의 지난 일주일을 나누고, 떨어져 있던 동안 느낀 그리움을 확인하듯 조용히 대화를 이어가던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행복이 친구 맥스의 아버지였다. 그는 다짜고짜 웃으며 물었다.
“행복이랑 맥스가 함께 사업을 해보겠다는데… Young, 어떻게 생각하세요?”
순간, 내 머릿속엔 여러 질문이 동시에 스쳤다.
사업? 11살이? 무슨 사업? 그리고… 3D 프린터?
맥스는 3D 프린터를 사서 무언가를 만들어 팔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좋아 보이는 것”이 전부다. 아이들은 가능성을 먼저 보고, 어른은 책임을 먼저 본다. 맥스와 행복이에게는 그저 “멋져 보이는 장난감 하나”지만, 어른에게는 그 장비의 가격, 유지비, 그리고 공동 소유의 문제까지 현실적인 계산들이 한꺼번에 따라온다.
프린터 가격은 1,000불. 맥스 아버지가 말한 행복이의 부담액은 500불.
여기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만약 아이들이 공동으로 돈을 내면…
그 장비의 실제 주인은 누구인가?
프린터 소유는 누구의 집인가?
고장 나면 책임은 어떻게 나누는가?
아이들이 싸우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행복이는 정말 원하는가, 아니면 친구가 하자고 하니까 끌려가는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마음’ 진심이지만, 그 마음을 지켜주는 일은 결국 어른의 몫이다.
행복이에게 물었다.
“정말 하고 싶어? 이걸로 오래 계속 만들 자신 있어?”
행복이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응!” 하고 대답했다.
그 눈빛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어른으로서 나는 판단해야 했다.
500불이라는 돈의 무게는 단순히 금전적 부담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이와 대화를 나누고 이렇게 결론 내렸다.
“프린터를 바로 사지 말고, 먼저 프린터를 빌려 사용해 보자.
정말 행복이가 좋아하고, 꾸준히 할 수 있으면 그때 사자.”
이것은 어른으로서의 선택이었고, 동시에 아이의 꿈을 꺾지 않으면서도 지켜주는 선택이었다.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책임을 지우는 대신,
경험할 기회를 주고,
배울 시간을 주고,
실수하더라도 안전한 공간 안에서 넘어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보호이자 응원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단순해서 더 솔직하다.
좋아 보이면 해보고 싶고, 해보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끝까지 책임지는 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 있다.
그래서 어른은 오늘도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하고 싶은 마음을 지켜주고,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고, 그러면서도 현실의 무게를 대신 들고 서 있는 존재.
행복이가 언젠가 정말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팔고, 그 수익으로 자기만의 3D 프린터를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아이의 열망과 현실 사이에서 최선의 다리를 놓는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