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행복이의 피아노 강습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피아노는 마무리된다. 2번 강습이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끝을 내본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무엇인가를 ‘마무리한다’는 행위 자체가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나는 자라면서 어떤 일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부모님도 나를 붙잡아 이끌어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들도 삶이 힘들어 자신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으니,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끝까지 해보라고 도와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완주한다는 마음가짐’은 나에게는 배워본 적 없는 감각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중간쯤에서 서성이며, 끝이 어떻게 나는지는 잘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부모가 된다는 일은 새로운 학교에 다시 입학하는 것과 같았다. 아이를 통해 배우고, 아이를 통해 성장하고, 아이를 통해 몰랐던 세계를 하나씩 알게 된다. 그래서 행복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경험하게 해 주며 나도 함께 배웠다.
테니스도, 농구도, 축구도 시켜보았다. 음악에서는 피아노를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이는 피아노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억지로 앉혀 연습을 시키면 손가락은 건반 위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딴 곳으로 가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끝까지 해야 하는 것과, 그만두어도 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과, 아이를 억누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결국 내린 답은 단순했다. 억지로 끝내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주는 편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피아노를 정리하고, 내년에는 기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행복이 혼자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함께 배우는 것이다. 나는 악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이가 새 악기를 시작할 때 옆에서 같이 코드를 잡고, 손가락이 아파서 찡그릴 때 함께 아파하고, 한 곡이 완성될 때 나도 같은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끝까지 해라”라고 말하려면, 나 역시 무엇인가 끝까지 붙들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부자의 관계가 한 걸음 더 깊어지는 과정이고, 내가 어린 시절 겪지 못한 ‘끝까지 해보기’를 뒤늦게라도 경험하는 길이며, 행복이에게도 “아빠도 함께 하는 여정”이라는 든든함을 주는 일이다.
행복이가 새 악기를 통해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행복이가 성장해 자기만의 고민을 마주하게 될 때, 나는 이렇게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빠도 너와 함께 배웠단다. 끝까지 해본다는 게 얼마나 귀한지, 그리고 무엇이든 좋아하는 마음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피아노가 끝나는 날, 그 끝은 사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