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가족이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어제부터 날씨가 좋지 않아 오늘도 비가 계속 내렸다. 하지만 이런 날씨 속에서도 행복이와 오랜만에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영화 데이트를 계획했다.
아침 10시, 첫 상영으로 모아나 2를 보기로 했다. 이번엔 특별히 4D 상영관을 선택했다. 사실 일반 영화는 훨씬 저렴했지만, 행복이에게 처음으로 4D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호주는 4D상영관이 많이 없다. 그런데 골드코스트에서 가능했다. 움직이는 의자와 물, 바람 등 다양한 효과로 영화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비가 와서 그런 것일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행복이와 나처럼, 다른 가족들도 비 오는 날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행복이는 처음 들어가는 4D 상영관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아빠, 이 의자가 움직여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영화가 시작되면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거야. 기다려봐.”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행복이는 눈을 반짝이며 의자와 화면, 그리고 바람의 움직임에 반응했다.
“와! 아빠, 진짜 바람이 불어요!” “물도 튀어요!”
행복이가 신나서 속삭이는 소리에 나까지도 웃음이 나왔다. 모아나의 모험과 바다의 파도, 그리고 대자연의 생동감이 4D 효과로 살아났다. 행복이가 영화에 푹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조금 무리했지만 이 선택이 옳았다고 느꼈다. 둘이 영화를 보는 데만 7만 원 정도가 들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행복이가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뒤 행복이가 말했다. “아빠,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다음에도 또 4D 영화 보면 안 돼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번에는 특별한 날에 다시 보러 가자. 오늘은 너의 첫 4D 영화였으니까 더 특별한 거야.”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과 짐을 맡기고 나니, 행복이는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바로 콴타스 라운지였다.
행복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스티븐은 콴타스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덕분에 행복이는 태어난 이후로 자연스럽게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제 10년이 지나면서, 라운지는 행복이에게 마치 공항의 필수 코스처럼 당연한 공간이 되었다. 라운지에 들어가는 순간, 행복이는 익숙한 풍경과 냄새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빠, 오늘은 뭐 먹을 수 있어요? 샌드위치 있나?”
마치 오래된 단골 카페에 들어선 것처럼, 행복이는 라운지 안에서의 경험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샌드위치 있고, 너 좋아하는 주스도 있을 거야. 먼저 자리를 잡아보자.”
행복이는 직접 음식을 골라 트레이에 담고, 아늑한 소파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아이스크림 바 근처를 서성이며 어떤 디저트를 먹을지 고민하는 모습은 행복이에게 라운지가 얼마나 익숙한 공간인지를 보여줬다.
그런 행복이를 보면서 스티븐을 따라 처음 라운지에 들어갔던 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나는27살까지 라운지 존재도 몰랐다 일반 대기실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 조용한 분위기, 깔끔하게 정리된 음식과 음료, 편안한 소파와 충전 시설들. 그 공간은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 같았다.
그날 나는 이곳이 단순히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특권을 상징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평소라면 공항의 번잡함 속에서 기다렸을 시간을 이곳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경험은 그 자체로 놀라웠다.
4D 영화관에서도, 라운지에서도 행복이는 감탄보다는 익숙함을 먼저 느낀다. 처음의 설렘 없이, 그 모든 경험을 평범한 일상의 일부로 여기는 행복이를 보면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는 행복이에게 라운지와 같은 경험이 당연한 것이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고,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행복이는 우리가 그의 곁에서 만들어준 이 모든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라운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영화관에서 4D 영화를 보며 감동을 더 느끼는 것처럼, 나는 라운지에서의 여유로움을 '특권'이라 생각하며 그 순간을 더 즐긴다. 행복이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여전히 특별한 선물 같다.
행복이에게는 라운지와 같은 경험들이 당연해 보일지라도, 나는 이 모든 것이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스티븐과 내가 함께 노력하며 만들어낸 시간과 환경 덕분에 행복이가 누리는 일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바란다. 행복이가 이런 경험을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를. 언젠가 그도 자라면서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