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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g 맬번니언 Dec 17. 2024

아이들 작품이기에 상상 그 이하를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행복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아이들이 그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직접 손으로 만든 구슬 놀이를 선보이는 날이었지요.  평소 직장이나 생업 때문에 부모님들이 이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 왔기에, 저희 부부는 가능한 한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이 행사를 위해 저는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새벽 근무자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하고 학교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과거에도 학교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어쩌면 제가 아이보다 더 기대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던 경험들이 떠올라, 이번에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방문은 단지 행복이를 응원하고, "아빠가 항상 네 옆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지요. 결과가 어떻든, 행복이가 자신이 만든 것을 뿌듯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이랑 다르게 선생님의 도움 없이 정말 아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만들기 때문에 결과물들이 정말 안 좋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 작품이기에 상상 그 이하를 볼 수도 있습니다.처음 그런 경험은 저에게 충격이 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부모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행사 준비를 도와주느라 분주한 선생님들, 그리고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부모님들 중에는 평일 오전이라 직장에 가지 못한 분들도 계셨고, 부득이하게 한쪽 부모님만 참석한 가정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저희가 이런 시간을 가능한 한 함께 보내는 데 의미를 두는 커플이라는 점에 스스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내는 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지만, 행복이와 함께하는 이런 작은 순간들이야말로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사가 시작되고 나니,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서로의 작품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들이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펼쳐졌습니다. 행복이 그룹아이들이 만든 구슬 놀이를 직접 들고나가 설명할 때는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손에 꼭 쥔 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른 부모님들의 칭찬도 저를 더욱 뿌듯하게 만들었습니다. 행복이는 무대 위에서 조금 쑥스러워했지만, 자신이 만든 것을 또래 친구들과 부모님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제가 오늘 학교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날들을 소중히 여기며, 아이의 곁에서 그 순간들을 함께 나누는 일이 저희에게는 부모로서의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후에 출근을 했습니다. 오늘의 기온은 무려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무더웠고, 트램 안으로 밀려드는 뜨거운 공기와 도로 위의 열기는 숨조차 가쁘게 만들었습니다. 트램 운전석은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창문 때문에 더운 공기가 금세 차올라, 에어컨을 켜도 열기를 완전히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손에 쥔 조작 레버조차 미묘하게 뜨겁게 느껴졌고, 땀이 이마에서 목덜미로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한 정거장에서 다음 정거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목이 마르고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 '만약 오늘 새벽 근무를 선택했더라면 이렇게 무더위에 지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새벽의 선선한 공기 속에서 운전하며 비교적 쾌적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들었죠. 하지만 곧이어, 아침에 행복이가 무대 위에서 자신이 만든 구슬 놀이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행복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지금의 고단함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뜨거운 트램을 몰며 시간은 더디게 흘렀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더위는 행복이를 지지하기 위해 감수한 고난이야.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더위와 피로에 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태양은 천천히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며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였고, 바람도 조금씩 선선해졌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고개를 들어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고된 하루 끝에 선사된 작은 위로 같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오늘의 더위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보낸 응원의 증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힘겹게 보낸 하루를 스스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며 마무리했습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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