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추억

by 고도리 햇반

산책 6일차. 지난 화요일부터 매일 걷기로 했다. 더 오래된 것 같았는데, 주말을 빼고 보니 5일밖에 안됐다. 첫 날 2킬로를 걸었고, 어제는 4킬로를 걸었다. 코치님은 뛰라고 했지만, 몸이 무겁기도 하고, 러닝화가 아직 안 왔고, 옛날에 러닝하다가 무릎이 아팠던 적이 있어서 일단 걷고 있다. 산책을 시작한 이유는 당연히 체중관리다. 학교 헬스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갔다가 땀냄새 나는 기계들에 질색하고 산책으로 종목을 전환했다.


결과는 대만족. 코치님 없이 하는 근력운동은 어렵고 재미없는데, 코치님이 그렇게 노래하던 걷기는 드디어 이렇게 독일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매연과 자동차소음과, 붐비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서울과 달리, 우리집 바로 뒤에 타우누스라는 큰 숲이 있다. 맑은 공기,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아름다운 새소리, 그리고 고요함이 나를 반겨준다.


30분 동안 걷는데 아무도 만날 수가 없다. 첫 날은 날씨도 좀 흐려서 혼자인 게 무서웠다. 아무도 없는 숲에 나 혼자라니, 동화책에서나 본 일이다. 하필 첫 날 코스가 기원전 철기시대 유적지여서 아스테릭스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AI가 대답하고 전기자동차가 달리는 21세기와 나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타우누스의 숲은 그저 그렇게 있었다. 자연(스스로 그러하다).


매일 같은 시각에 산책을 했다는 엠마누엘 칸트도, 아름다운 가곡을 작곡한 슈베르트도 이런 독일의 숲을 걸었으려나. 숲을 홀로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색에 잠기게 된다. 숲의 고요함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고요한 독일 숲길에서 외할머니를 보내드렸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거동도 못하시고 기억도 못하시고 요양원에서 힘들게 지내시다가 가셨다. 한국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찾아뵙지도 않고 그냥 왔는데,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그예 돌아가신 것이다. 할머니에게 발길을 끊은 이유는 나를 기억 못 하시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단 하나 뿐인 외할머니지만, 외할머니께는 내가 13명의 손주 중 한 명일뿐이라는 섭섭한 마음에 더 이상 찾아뵙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추억은 무의식의 저편 기억창고에 봉인되었다.


그런데 독일의 타우누스 숲에서 그 기억창고가 열렸다. 외할머니는 원래 한없이 정다운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우리 외할머니는 진짜 그런 외할머니였다. 엄마한테 혼날 짓을 한 내가 맞을까봐 막아주던 외할머니,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이불 밑에서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던 외할머니, ‘우리 강아지’라고 엉덩이를 두들겨주던 외할머니, 우리와 고스톱을 치며 돈을 잃어주시던 외할머니. 손주들 자라고 방에 커다란 모기장을 쳐 놓으셨던 외할머니, 명절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사라다를 잔뜩 해놨다고 실컷 먹으라고 당부하시던 외할머니, 목소리가 3화음, 심할 때는 5화음으로 갈라지던 나의 외할머니...


할머니와 전혀 상관없는 독일에서, 기원전부터 존재했다는 타우누스 숲에서, 나는 외할머니와의 추억에 잠겨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길이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고 시냇물과 만났다가 헤어지듯이, 나의 생각도 어린 시절로 이어지고 외할머니의 손길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사라지고 할머니가 이제 영영 이 세상에 안 계시고 나는 외할머니를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독일에 와서 삼시세끼 밥 해 먹느라, 일상생활을 기초부터 다시 재건하느라, 감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눈코뜰새 없이 바빠서 한국을 그리워할 틈도, 외할머니를 추모할 시간도 내지 못했다. 외할머니가 그렇게 이뻐해 주셨던 우리 13명의 손주들은 다 어른이 되어 바쁘고 더 이상 모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각자 품고 있는 기억의 파편들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우리 외할머니의 퍼즐. 할머니의 장례식을 끝으로 더 이상 맞춰지지 않을 그 퍼즐. 나는 그 마지막 자리에조차 가지 못했고, 잃어버린 퍼즐 조각으로 남게 되었다.


세대는 이렇게 단절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셔서 끊긴 우리 집안만의 레시피-나는 먹어봤지만 우리 아이들은 먹어본 적 없는 그 맛. 지글지글 음식냄새와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했던 명절을 모르는 아이들. 우리 할아버지의 자린고비 전설과 할머니의 결벽증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는 친사촌들, 외할머니의 3화음 목소리와 고스톱판의 경쾌하고도 찰진 화투장 소리를 기억하는 외사촌들은 이제 모두 중년이다. 우리마저 죽으면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영영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머니의 서랍장을 소중히 여기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나의 결벽증 할머니에 대해서 묻곤 한다. 봉숭아물을 들여 준다고 백반을 사 와서 찧다가 그 냄새에 왈칵 눈물을 쏟는 엄마 때문에 봉기할머니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그 때 엄마도 나처럼 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도, 어렸을 때 엄마는 엄마로 태어난 줄, 할머니는 할머니로 태어난 줄 알았었지 피식 웃게 된다.


나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언젠가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손주들이 생기면 다시 할머니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그 때 우리 할머니는 나한테 이렇게 해주셨었지 떠올리며, 나도 혼나는 손주들을 지켜주고, 배부르다고 해도 더 먹으라고 하겠지. 아이들 기억 속에 엄마의 엄마의 엄마라는 외증조할머니를 찾아뵈었던 일은 희미해지겠지만, “아이구 우리 강아지”라는 외할머니의 말버릇은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에게로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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