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만전자? 백만엄마!

by 고도리 햇반

전쟁 때문에 주식시장이 출렁거린다. 하루에 비 오고 해 나고 바람 불고 우박 왔다 눈 내리는 독일 봄날씨 같다. 그 날 주식시장이 어땠는지 나는 남편의 얼굴만 보면 안다. 본인은 아니라고 극구 부정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날이 있다. 우리 가족이 독일로 이사 오면서 폭등한 주식이 하나 있다. 바로 엄마 주식이다.

주식시장으로 치면 나는 삼성전자다. 독일에 와서 나도 두 배가 되었다. 아니 그 이상이다. 아이들의 갈 데 없는 애정이 다 엄마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수익률 변동성이 너무 심하다. 아니 오히려 나쁘다. 어떤 날은 엄마가 너무 매정해서 하루 종일 눈치만 봐야 한다. 계속 투자해야 하나 현타가 올 것 같다. 지금 치고 들어와야 하는 아빠는 아이들로부터 애정수익을 거둘 이 절호의 기회를 못 살리고 있다. 떡락할 대로 떡락해 있는 본인 주식 가치를 높일 마지막 기회인데. 아이들과 공놀이해만 해줘도 “아빠 최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투자찬스인데. 엄마는 안타깝다.

나는 주식하는 사람이 아닌데, 주식으로 생각하니 한층 격렬해진 아이들의 싸움이 쉽게 이해된다. 한국에서는 애들이 분산투자를 했었다. 일단 엄마는 들고 있고, 아빠, 할머니할아버지, 유치원선생님, 이모님, 피아노선생님, 사촌누나, 친구들에게 사랑을 분산했다. 어떨 때는 할아버지 장난감 찬스로 대박을 터뜨리기도 하고, 이모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이나 피아노 선생님이 주시는 참잘했어요 선물에 기뻐하면서 투자수익을 거두곤 했다. 그러다 내가 투자한 친구가 다른 친구랑만 논다던지, 유치원 선생님이 다른 애를 더 이뻐한다던지,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삼성전자라도 들고 있는 데 안도한다. 그래, 엄마가 있었지. 그런 날은 저녁 시간에 내 옆자리를 두고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한국에서는 본인들도 분산투자를 하는데다가, 삼성전자 수익률이 좋았다. 삼성전자가 맨날 테니스 치고, 집안일도 안 하고, 친구들 만나고, 쇼핑하고, 가끔 일하러 가서 분위기 전환도 하고, 학교 끝나고 오면 책도 읽어주고 간지럼괴물 놀이나 절대 못찾아 숨바꼭질, 불꽃슛피구 등 다양한 레파토리로 놀아줬던 것이다. 삼성전자한테 혼나기도 하지만, 레고 갖고 놀면서 혹은 본인 방에 들어가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주말에 할머니네 가서 텔레비전을 실컷 볼 수도 있었다. 집안 가득한 장난감 숲으로 피신하여 같이 혼난 형님아우가 사이좋게 놀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 오니 삼성전자 애정수익률이 폭락했다. 전쟁에 버금가는 난민생활로 인해 드라마하던 시절의 비상위기모드를 십 년 만에 켠 엄마는 “감정은 사치다.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전투훈련 조교가 된 것이다. 청소, 빨래는 물론이요 삼시세끼 장 봐다가 애들 입에 넣어줘야 하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책 읽어주는 시간? 빼! 엄마랑 놀이? 둘이 놀아! 숙제 아직도 안 했어? 숙제는 네가 챙겨야지! 지금 엄마아빠가 놀고 있어? 이제 네가 알아서 해!

한국에서의 어리광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집에 오면 알아서 샤워하고 옷을 입고 저녁을 먹어야 한다. 아침에 엄마가 양말도 안 신겨준다. 엄마는 도시락 싸느라 바쁘니까. 그나마 아침에 응가 잘하고 치카 하면 칭찬받는다. 모닝똥마저 안 하면 삼성전자 기부니가 폭락한다. 조심해야 한다. 학교 갔다 와서 한국 애들하고 놀았다고 하면 안 된다. 못마땅한 엄마한테 잔소리 폭격을 들어야 한다. 말도 안 통하는 애들한테, 얼굴도 이상하게 생긴 애들한테 가지도 않는 애정을 엄마는 자꾸 권한다. 나중에 대박난다니까? 한 번 투자해 봐. 나는 한국주식이 좋은데. 글로벌 애정 투자의 성공사례를 늘어놓는 엄마.

둘째가 더 사나워진 이유도 엄마수익률이 퍽퍽해진 탓이다. 독일 와서 엄마한테 올인했는데 엄마가 놀아주지 않는다. 책도 안 읽어준다. 재밌고 다정하고 웃기고 좋은 거 다 하던 우리 엄마를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고 던지고 때려보지만, 옛날 같은 우쭈쭈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혼만 나고... 그러니 불안감이 높아져서 엄마한테 엉겨붙으면 엄마가 질색하며 떼어낸다. 귀신의 집이 무서워서 엄마가 없으면 잠도 깊이 못 자는데, 엄마는 자꾸 일어나서 어디 가버린다. 엄마를 찾아 목놓아 소리 지르면 달려와 안아주던 엄마는 어디가고, 형아 깬다고 못됐다고 윽박지르는 엄마. 그래서 추가투자를 했다. 엄마가 좋아하니까 학교도 열심히 가고, 엄마가 좋아하니까 외국아이들하고 놀았다고 보고도 하고, 형아가 칭찬받는 일기쓰기도 시도하고... 하지만 엄마는 형아 공부만 봐주고, 형아 방해하지 말라고 밀어내고, 형아만 챙기는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다른 투자처를 찾도록 내몰리는 아이들. 다행히 둘째는 외국여자아이들한테 아주 핫하다. 본인 주가에 외국인 매수가 몰려서 여유가 생긴 다행이는 본인도 해외투자를 시도했다. 라라, 베이다, 엘라 등... 그런데 이 새로운 해외 투자에 삼성전자가 동반상승하는 것이 아닌가! 꽤 쏠쏠하다. 하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삼성전자의 변동성을 믿을 수 없게 된 첫째는 본인의 애정자산을 지켜줄 제2의 삼성전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아직 오르지 않은 숨겨진 보석 같은 한국주식을. 아무래도 해외투자 마음 먹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한국 친구 타령이 마음에 안 들지만, 일단 향수병에 걸리면 안 되니까. 엄마는 한국 친구를 초대하는 온리 잉글리쉬 부활절 이벤트를 기획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독일에 와서 6명의 한국인과 1명의 독일아줌마만 매일 보고 있는 우리 남편. 퇴근하면 바로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니, 한국말도 줄었다. 좀처럼 지루해하지 않는 사람이 좀 심심하다고 할 지경이다. 본인도 심심하고, 애들도 심심하니 같이 놀면 참 좋을텐데, 하루 30분 몰두해서 놀아주기를 못해서 아이들이 몰라주는 부활절 연휴계획만 열심히 짜고 있다. 정갈한 부활절 계획표를 본 마누라가 기뻐한다. 그래 어차피 수익률 저조한 아이들 주식에 추가 투자를 검토하기는 이미 늦었어...역시 삼성전자가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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