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와 X3

by 고도리 햇반

내 나이 마흔하고 여섯이다. 이 나이에 해외살이라니, 모험을 하기에 나는 너무 늙었다. 심지어 어린 아들이 둘이다. 어릴 적에는 하고 싶은 일을 좇아 일본도 가고, 미국도 가고, 두려운 게 없었다. 그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패기로 넘쳤더랬다. 마흔여섯에 다시 도전하는 해외살이의 정체성은 ‘엄마,’ 목표는 ‘아이들 교육’이다. 맹자 엄마도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는데, 어디 나도 한 번 해보자고 바닥난 에너지를 영끌해서 도전!


결론은 '못해먹겠다.' 우리가 들어갈 사택은 너무나 더럽고 낡았는데, 청소도 안 해주고 수리도 안 해준다. 독일이니까 하세월 기다려야 한단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해봐도 기다리라는 말 뿐. '우리집'의 준비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 하루하루는 또 숨돌릴 틈 없이 바쁘다. 매일매일 돌려야 하는 세탁기, 돌아서면 어질러진 바닥, 마트에서 생소한 재료들로 장을 봐서 삐약거리는 이놈들 입에 먹을만한 것 만들어서 넣어주느라 이국의 정취를 느낄 여유 따위는 없다. 독일 가면 맥주 맛있겠다고 좋아했었는데, 여기 와서 맥주 한 번 입에 못 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나 왜 이러고 있지?


대망의 아이들 등교 첫 날이 돌아왔다. 학교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유치원 건물과 초등학교 건물 사이에 연못이 있고, 시냇물이 흐를 줄이야. 거대한 운동장이 두 개나 있고 실내체육관이며 음악실이며 대단한 위용이다. 집 없는 한국거지 생활에 지쳐있던 남편과 나에게 이보다 더 신선한 피로회복제가 있으랴. 독일 온 보람이 있네하고 우리는 손을 꼭 잡았다.


수줍음이 많고 섬세해서 걱정했던 첫째는 너무나 흔쾌히 새로운 도전에 응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그 동안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한국에서의 선생님들도 불철주야 뜨겁게 영어 훈련해주셨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한숨 돌리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가 터졌다.


아무말이나 잘 지저귀고 용감한 둘째는 그저 가서 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노랑머리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 앞에서 못 들어가고 내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중히 가져온 새 필통을 교실에서 꺼내면 안된다고 선생님이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내가 생각해도 선생님이 너무했다… 그렇게 무섭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는데.


결국 첫째날 한 시간도 못 버티고 철수… 집도 아직 이사를 못 했는데, 둘째의 등교거부 사태까지… 야심찬 맹모삼천지교계획은 망하기 직전이다. 다행히 첫째가 기분좋게 첫 날을 보내고 하교해서 워너비맹모는 첫째에게 한없는 칭찬을 퍼부으며 의지했다. 그래 너라도 행복해서 엄마는 기쁘다.


어쩔 수 없이 둘째를 데리고 중고차샵에 갔다. 거기서 학교가기 협상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중고차 샵에 둘째 마음에 드는 차가 있었던 것이다! 내일 학교 잘 가면 그 차를 사기로 새끼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했다. 진짜? 설마? 한국에서 젊고 예쁜 선생님하고만 지냈던 둘째는 선생님이 왜 할머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엄마도 선생님이 무섭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터라 해줄 말이 궁했다. 머리 따로 말 따로 선생님을 커버 쳐주자니 역부족이었다.


다음 날 둘째는 학교에 갔다. 너무 쉽게 등교해서 어리둥절했다.


하교시간에 목 빼고 기다렸다. 어떤 얼굴로 나올까. 둘째는 마녀할머니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왔다. 기분 좋게, 엄마 나 해냈어 하는 얼굴로. 이사 스트레스로 쪄들었던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우리 아들 잘했어!!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격하게 안아주고 뽀뽀폭격을 했다. 그래, 너한테 이런 좋은 교육을 누리게 해주려고 여기 온 거야!! 감격한 엄마 품에서 풀려나자마자 둘째가 물었다. “X3 샀어?”


맹모는 맹자를 공부시키려고 이사를 세 번 했고, 나는 X3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