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게 될 사택은 귀신의 집이었다.
독일제 귀신의 집이라 튼튼해서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50년 되었다는데, 방충망은 빵꾸 나 있고, 묵은 때가 끈끈하게 엉겨 붙어서 때깔이 우중충하기 그지없다. 독일 오기 전 사진을 받아 보고 1차 쇼크를 받았다. 엉망진창 짐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걸 보니 관리가 전혀 안 된 것 같았다. 실물을 영접하니 오일도 아니고 2차 쇼크를 받았다. 머리에 질끈 띠를 동여매고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기와는 달리 알뜰살뜰 살림하는 편이라, 이런 집에서 내가 살아야 한다니 울고 싶었다.
귀신의 집 청소와 원상복구(?)를 담당하는 모서비스는 더 형편없었다. 청소도 대충, 페인트칠도 대충, 모로코 사람, 아프리카 사람 보내면서 직원은 한 번 와 보지도 않았다. 진행상황도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먼저 전달해주지 않았다. 애가 닳은 나만 발을 동동 굴렀다. 일하기가 싫은 건지, 호구고객님이 아니라 호구고객님의 직원의 배우자라 그런 건지, 뭐든 함흥차사, 감감무소식이다. 하지만 을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자아가 각성했다. 나는 누구냐. 나는 방송국 드라마 PD 출신이다. 안되면 되게 해야 한다고 훈련받았다. 일하는 사람 쪼기가 내 전문분야다.
이제 모서비스가 괴로울 차례. 그 동안 한 번도 불평불만 없던 호구 고객님이었는데, 갑자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한다. 페인트 브랜드가 무엇이냐, 어째서 화장실에 때가 안 벗겨졌느냐, 변기를 교체하고 싶으니 견적을 달라, 커텐봉은 왜 내려놨느냐, 견적서의 내역이 불충분하다..
하지만 이삿날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귀신의 집 신세를 못 면했다. 페인트칠도 안 되어있고, 전구나 커텐, 스위치도 널부러져 있었다. 나의 울화통 터지는 항의에 결국 모서비스에서 직원 둘이 면상을 보여주러 방문했다. 뺀질뺀질한 대리님은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운동화를 신고 와서 말했다. “한국과는 달라요. 돌아가실 때쯤에는 여유가 생길 거에요.” 자기가 일 안 해놓고 독일 탓하기.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님께서 오늘까지 해주셔야 할 계약내용이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원성이 오버우어젤에 드높았나보다. 최고책임자 소장님께서 행차하셨다. 옛날옛날 나랏님이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시러 나오셨었더랬지. 가엾은 민초, 한국 거지는 소장님께 간곡히 말씀드렸다. “이런 곳에서 애들을 키울 수는 없사옵니다.” 눈물로 호소하는 맹모워너비에게 소장님은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시고 돌아가셨다.
그 날 저녁, 뺀질뺀질한 대리님이 먼저 불려갔고, 다음 날 모서비스 사장님이 소장님을 알현하러 들어갔다.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하였다. 쌤통쨈통양념통이었다. 드디어 모서비스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노고는 헛되지 않았다.
다음 날, 모서비스 자켓을 입은 두 명의 한국직원들이 나타났다. 그래, 뺀질뺀질한 대리님 아니고, 세계가 인정하는 근면성실 한국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성실해보이는 외국인 페인트맨도 왔다. 그들이 들러붙어 귀신의 집을 사람 사는 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졸졸 따라다니며 참견하고 지적질을 해대니 비로소 나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지금 나는 그들의 작업을 감독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이 아주 잘 써진다. 오늘은 드디어 독일 맥주를 마셔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