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60년대 TV SF를 설명할 단어 수렴진화
이 글은 제가 연재 중인 SF로 보는 20세기의 9장입니다.
각 글은 개별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나 앞의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1장 링크를 남깁니다.
60년대 글은 지난달 8장으로 끝이 났으나 제가 빠트린 부분이 있어 이렇게 새로운 장을 씁니다.
바로 1967년 일본의 특촬 드라마 캡틴 울트라와 스타트렉 TOS의 유사성과 그 기원에 관한 겁니다.
과거 60년대 글에서 미국, 영국, 일본에서 비슷한 시대정신의 영향으로 낙관적인 SF가 탄생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의 대표적인 예로 스타트렉(미국), 닥터 후 2대 닥터(영국), 울트라맨(일본)이 1966년 등장했다 했습니다. 또한, 각 작품의 제작진은 서로의 작품에 대해 정확히 몰랐고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고도 했지요.
이번 장에서는 미국과 일본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적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형식을 공유한 두 개의 드라마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바로 일본의 특촬 드라마 캡틴 울트라와 미국의 드라마 스타트렉 TOS(The original series)입니다.
캡틴 울트라(1967)란?
캡틴 울트라는 1966년 울트라맨이 종영한 후 1967년 4월 16일부터 1967년 9월 24일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7시에서 7시 30분에 방영된 총 24화짜리 드라마입니다. 주 내용은 우주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우주에서 펼쳐지는 여정과 싸움을 다룬 모험담입니다. 우주 스테이션 실버스타 소속 우주경찰 순찰대란 곳에 소속된 주인공 켑틴 울트라(미야기 혼고)는 우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스피겔호를 타고 500만 마력의 로봇 핵, 위장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키케로 성인 조와 함께 여러 외계인과 싸우며 여러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게 주내용입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들어보면 은근히 닮아있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타트렉 TOS입니다. 스타트렉 TOS 또한 일종의 우주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우주에서 펼쳐지는 탐사, 외계인과의 접촉과 때때로는 외계인과의 분쟁을 다루었죠.
캡틴 울트라와 스타트렉 TOS의 공통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주개척시대에서 낙관적으로 그려지는 인류와 과학에 대한 신뢰, 그리고 스타플릿과 우주경찰 순찰대라는 공권력에 대한 믿음도 비슷하죠. 또한, 리더십 있는 캡틴(캡틴 울트라와 제임스 T. 커크)의 존재, 우주선을 타고 탐험(스피겔호와 엔터프라이즈 호)을 한다는 요소도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팀구성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스타트렉의 제임스 T. 커크, 스팍, 레너드 맥코이로 이뤄진 트리오는 캡틴 울트라에서도 캡틴 울트라, 핵, 키케로 성인 조로 닮아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결론이 나는 듯합니다. "캡틴 울트라는 스타트렉 TOS의 영향을 받은 직계후손이다."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기 힘들다고 봅니다.
캡틴 울트라가 스타트렉 TOS의 직계 후손이라 보기엔 방영시기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캡틴 울트라는 1967년 4월 16일에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타트렉 TOS는 미국에서는 1966년 9월 8일에 방영을 시작했으나 일본에서는 1969년이 되어서야 우주 대작전(宇宙大作戦)이란 제목으로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기에 일본 제작진들이 스타트렉 TOS를 시청하기엔 힘들었을 거라 봅니다. 물론 각본이나 일부 장면을 힘들게 구해서 본 사람들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스타트렉 TOS가 캡틴 울트라의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죠.
또한 스타트렉 TOS와 캡틴 울트라가 닮아있기도 하나 세세하게 뜯어보면 다른 점도 여럿 존재합니다. 우선 캡틴 울트라는 특촬 액션, 괴수, 히어로가 극의 중심인데 반해 스타트렉 TOS는 철학, 윤리, 인간성 중심이죠.
또한 스타트렉 TOS에서는 인류의 주요 적인 로뮬란, 클링온과 때때로 화해 분위기나 협력 분위기가 형성되는 에피가 일부 존재합니다. 하지만 캡틴 울트라에서는 주요 적 중 하나인 반델 성인과 화해나 협력하는 에피소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스타트렉 TOS와 캡틴 울트라는 미국과 일본, 서로 다른 대륙에서 탄생한 도플갱어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두 작품에는 앞서 말했듯 생각보다 많은 연관점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스타트렉 TOS와 캡틴 울트라는 무슨 관계일까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힘들고 서로의 작품을 봤을 가능성도 적은 두 작품의 제작진들은 어떻게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내놨을까요?
이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우선 수렴진화란 개념에 대해 알아봐야 합니다. 생물은 같은 환경 압력이 작용하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이는 생물에게만 통용되는 법칙이 아니고 매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환경이 비슷하면 작품도 비슷하게 나온다는 거죠. 60년대 스타트렉, 닥터 후, 울트라맨 세 작품은 제1세계 선진국들의 우주개발 붐, 컬러 TV의 보급, 사회복지의 확장 등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밝고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타트렉 TOS와 캡틴 울트라가 1966~67년의 우주 붐과 TV SF 전성기, 그리고 여러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로 형성된 시대 분위기로 인해 독립적으로 비슷한 형태로 진화한 수렴진화의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스타트렉 TOS와 캡틴 울트라뿐만 아니라 닥터 후, 울트라맨, 타임 터널, 우주소년 아톰 같은 예시로 나왔던 60년대 TV SF들 상당수가 수렴진화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과거 글에서 스타트렉 TOS가 금지된 행성(1956)이란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스타트렉의 제작자 진 로덴베리가 직접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므로 확실한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캡틴 울트라 또한 금지된 행성의 영향을 일부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작진이 직접 밝힌 정보는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금지된 행성의 로봇 '로비'와 캡틴 울트라의 로봇 '핵'의 디자인은 상당 부분 유사점이 있습니다.
두 로봇 모두 뭔가 짜리 몽땅한 느낌의 동글동글한 디자인이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굳이 말하자면 캡틴 울트라의 핵은 금지된 행성의 로비의 저예산 버전 같은 느낌이죠.
캡틴 울트라 제작진이 금지된 행성의 로비에서 핵의 디자인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힌 적은 없으나 두 로봇은 상당 부분 닮아있습니다. 금지된 행성은 56년 영화고 캡틴 울트라는 67년 특촬이므로 캡틴 울트라의 제작진이 금지된 행성이란 영화를 보았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물론 진실은 제작진만이 알겠지만 저는 이것을 캡틴 울트라가 금지된 행성에서 일정 부분 모티브를 따왔다는 증거로 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캡틴 울트라의 여러 설정들(세 명의 주역, 열정적인 캡틴 등)이 금지된 행성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는 거겠죠. 마치 스타트렉 TOS가 금지된 행성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온 것처럼요.
사실 일본과 미국 커뮤니티에선 캡틴 울트라를 장난 삼아 스타트랙의 일본판, 일본에서 만든 스타트렉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때때로 있습니다. 캡틴 울트라를 과거 본 사람인 저는 두 작품이 닮아있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캡틴 울트라 제작진이 스타트렉 TOS를 봤을지도 예전부터 큰 궁금증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조사하면서 알게 된 바로는 캡틴 울트라 제작진들은 스타트렉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을 것이고 60년대 수렴진화의 결과물 중 하나가 캡틴 울트라란 점입니다. 그리고 스타트렉과 캡틴 울트라는 금지된 행성이라는 공통 조상을 둔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점도요.
마지막으로 스타트렉 TOS는 전설이 되었지만 캡틴 울트라는 왜 단발성 작품으로 그쳤는지에 대해 말해보고 싶습니다. 두 작품은 비슷한 점이 많았으나 하나의 크나큰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바로 타자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캡틴 울트라는 인류 이외의 종족에게 너무나도 무자비했습니다. 물론 인류와 우호관계인 키케로 성인이 등장하나 그뿐입니다. 1화부터 13화까지의 악역이었던 반델 성인은 절대악으로 등장하며 인류는 결국 이들을 괴멸시킵니다. 또한 그 이후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지성체라기보다는 퇴치해야 할 우주괴수에 가까웠죠.
그에 반해 스타트렉 TOS에서 나오는 주적 클링온과 로뮬란은 절대악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또한, 개개인으로서 대화가 가능한 존재이나 정치적 이유로 엔터프라이즈호 주역들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차이는 스타트렉을 아직도 전설로 만드는 주요인이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많은 SF작품들을 봐왔으나 아직도 마음속 1위는 스타트렉인 이유는 이 점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걸로 프롤로그부터 9장까지의 60년대 SF에 대한 기나긴 여정을 마칩니다. 우선 프롤로그부터 9장까지의 글을 모아 브런치북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수와 번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