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낙관주의 SF의 끝

8장: 냉전과 낙관적 SF의 관계 그리고 마무리

by SF mania

이 글은 제가 연재 중인 SF로 보는 20세기의 8장입니다.

각 글은 개별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6. 60년대 TV SF의 낙관이 지속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냉전

아이러니하게도 냉전은 60년대 TV SF의 낙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냉전은 1947년부터 시작해 91년까지 지속되었죠. 그 중에서도 60년대는 냉전 시기중에서도 가장 핵전쟁의 위협이 큰 시기였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아이언 자이언트(1998)를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1957년대로 비슷한 시기입니다. 아이언 자이언트에서는 핵전쟁에 대비해 사람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비상시 책상 아래 숨거나 대피하는 훈련을 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영화 자체가 미국과 소련의 갈등을 배경으로 로봇과 아이의 우정을 다루다보니 당시 시대상이 잘 등장합니다. 핵추진 전략원잠과 SLBM등 어린이 애니메이션 치고는 나오는 무기가 살벌한데 그 이유가 아무래도 50년대부터 60년대의 냉전의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다루며 이 98년도 애니메이션은 60년대 사회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와 냉전, 그리고 전쟁에 민감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정리하자면 60년대는 47년부터 시작한 냉전이 가장 심각해보이던 시기였습니다. 한국전쟁처럼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은 1965년 시작했으나 아직 장기화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대표되는 핵전쟁의 위협은 그 어떤 시기보다 강력해보였습니다.


60년대 SF의 낙관주의는 60년대 사회 분위기의 반작용이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60년대 사회는 그 어느때 보다 밝아보이면서도 그 밝음이 핵단추 한번으로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사람들은 tv에서나마 국경을 넘어, 인종을 넘어 모두가 연합해 진보를 향해 나가는 미래를 꿈꿨습니다. 스타트렉의 행성연방도 울트라맨의 과학특수대도 닥터후의 국제우주 사령부도 이 진보를 상징한다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질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tv앞에서만이라도 진보라는 꿈을 꾼것입니다.


7. 마무리

이 꿈에 대해 생각하며 저는 필립 k. 딕의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머서교라는 독특한 종교가 나옵니다. 이 종교는 핵전쟁 이후의 인류를 결속시키는 공감 기반의 유사 종교입니다. 머서라는 계속해서 돌을 맞으며 산을 오르는 노인의 고통을 사람들은 공감상자라는 도구를 통해 공유합니다. 머서의 고통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있고 공감하는 존재임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머서의 고통뿐만 아니라 접속한 모든 사람들의 감정까지 공유합니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서 머서교의 머서가 단순한 배우임이 밝혀지고 머서교가 가짜임이 탄로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짜임을 알고도 머서교를 통해 공유한 감정과 고통을 계속 믿으며 살아가는 결말로 끝납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과 거짓이 아닌 공유된 감정이란 거지요.


60년대 낙관적인 SF들도 결국 머서교와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TV라는 공감상자에 모여 낙관적인 미래를 보며 꿈을 키우고 감정을 공유하고 때때론 아픔을 공유했지요. 그리고 이 낙관적인 미래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감정을 공유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화씨 451이란 소설에서는 TV에 빠진 사람들이 책을 불에 태우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화씨 451은 한가지 간과했습니다. TV는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도구도 될 수 있으나 동시에 사람들의 감정, 그리고 고통을 공유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요. 결국 사람들은 SF TV 쇼를 보며 서로에게 공감했고 위로하며 이 밝으면서도 어두운 시기를 극복해낸 것입니다.


60년대의 밝은 SF들은 그 후 시대의 변화로 인해 점차 영향력이 줄었습니다. 현재 2020년대 밝은 SF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면 마션, 스타트렉 Strange New World 정도가 전부죠. 닥터후는 단순히 낙관적이라고 보기엔 인간비판과 사회비판적인 에피가 늘어났습니다. 최근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된 닥터후 뉴뉴시즌의 도트와 버블은 인간비판으로 시작해도 결국은 인간을 찬가하거나 옹호했던 닥터후답지 않게 인종차별, 인간의 이기심등을 다뤘죠. 울트라맨은 최근 전국가가 연합하는 과학특수대같은 조직이 등장하기보다는 일본의 한 도시에 출연하는 괴수들과 싸우는 구조를 취하고 있죠. 울트라맨 블레이자, 울트라맨 아크, 울트라맨 오메가 등 모두 일본내 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괴수 혹은 외계인과의 싸움을 중점으로 합니다. 스타트렉도 스타트렉 디스커버리라는 최근작은 낙관적인 미래와는 거리가 먼 전개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60년대에 탄생한 낙관주의 작품들은 아직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스타트렉, 닥터후, 울트라맨 모두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고 우주소년 아톰 또한 지속적으로 리메이크 혹은 외전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특촬 썬더버드도 2004년 실사영화와 2015년 애니메이션 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죠.


이처럼 60년대의 낙관주의란 유산은 현대 SF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며 계속해서 숨쉬고 있습니다. 결국 이 유산이 없었다면 어둡고 암울한 SF나 스타워즈같은 판타지와 SF가 섞인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만 있었을 겁니다. 이 유산이 현재의 SF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거지요.


이렇게 60년대 SF의 낙관주의에 대한 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장수와 번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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