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낙관적 SF를 만들어준 5가지 토대들
이 글은 제가 연재 중인 SF로 보는 20세기의 7장입니다.
각 글은 개별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전 글에서 저는 60년대에 낙관적인 SF가 많이 나왔다는 사실과 SF가 유행했던 그 이유 자체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SF 중에서도 낙관적인 SF가 주류를 이루었는지 그리고 그 낙관적인 SF가 왜 특히 TV에서 더 나타났는지에 대해 분석해보려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60년대 SF에서 낙관적인 SF가 주류였던 건 사실이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SF 소설계에서는 낙관적인 SF는 점차 사라지고 뉴 웨이브(New Wave)라고 불리는 문학 사조가 유행했습니다.
뉴웨이브는 우주로의 진출보다는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기술이 가져오는 모순 등을 탐구하는 문학사조였습니다. 다니엘 키스의 1966년작 '엘저넌에게 꽃을'은 수술을 통해 지능이 급격하게 상승한 지적 장애 아이가 오히려 불행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영화 소일렌트 그린의 원작인 66년작 소설 'Make room! Make room!'은 자원의 한계,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그리며 미래가 단순히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또한 비록 뉴 웨이브 장르로 분류되진 않으나 로버트 A. 하인라인의 66년작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유머러스한 문체 뒤에 달로 진출한 인류와 지구의 인류 간의 갈등과 분쟁, 그리고 전쟁을 다뤘습니다.
이는 66년 TV SF에서 밝은 SF를 대표하는 스타트렉, 울트라맨, 닥터후(2대 닥터)가 등장한 것과 대비됩니다. 그리고 66년을 한정해서가 아니라 60년대 전체로 확대해 봐도 문학에서 나타난 인간 내면의 어두움, 기술에 대한 모순, 우주로의 진출에 대한 현실적(혹은 비판적) 시각은 여전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높은 성의 사나이, 스캐너 다클리 등으로 유명한 필립 k. 딕이 활동한 시기도 이때였습니다. 또한 잔혹하고 폭력적인 스토리, 난해한 결말로 지금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할란 엘리슨도 이 시기에 활동했죠.
영화 쪽도 무조건 밝은 작품이 나오지만은 않았습니다. 혹성탈출(1968)은 인류가 핵전쟁으로 결국 자멸할 것이란 미래를 그렸고 알파빌(1965)은 슈퍼 컴퓨터가 지배하며 감정을 표현하면 죽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죠. 또한 화씨 451(1966)은 TV 매체에만 중독되어 책을 불태우는 미래를 그렸습니다.
또한 TV SF에서도 낙관주의에 반하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환상특급(1959)과 outer limits(1962)가 있습니다. 이 흑백 드라마들은 한 화 완결 형식의 엔솔로지였고 핵전쟁에 대한 공포, 외계인의 침공,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시청자들에게 서늘한 경고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6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대중이 선택한 것은 이런 경고가 아니라 희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환상특급의 흑백 화면보다는 스타트렉의 화려한 원색 유니폼이 TV 앞의 가족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문학이 어두움을 향해가고 영화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할 때 왜 유독 TV SF만은 그토록 눈부신 낙관주의를 고집했을까요? 여기에는 TV라는 매체가 가진 고유한 환경과 시대적 맥락이 작용했습니다.
첫째, 60년대 TV는 거실의 핵심요소였습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홀로 읽는 소설이나 어두운 극장에서 몰입하는 영화와 달리 TV는 온 가족이 저녁 식사 후 거실에 모여 시청하는 매체였습니다. 보수적인 시청 층과 엄격한 방송 심의는 체제를 전복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급진적 묘사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TV 드라마는 현실의 공포를 잊게 해주는 해독제여야 했습니다. 당시 저녁 뉴스는 베트남 전의 참상, 케네디 암살, 인종 차별 시위 같은 끔찍한 현실을 컬러 화면으로 생중계하고 있었습니다. 뉴스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드라마마저 암울한 디스토피아라면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려버렸을 겁니다. 대중은(그리고 광고주들은) 끔찍한 뉴스 뒤에 이어질 안전하고 희망찬 미래를 원했습니다.
즉, 소설이 뉴웨이브를 통해 기성세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찌르는 비판의 도구였다면, TV는 당시 사회가 지탱하고 있던 낙관론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전파하는 체제 수호적 매체였던 셈입니다. TV SF에서도 사회비판은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성장한 인류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게 그 예시죠. 그렇다면 TV가 그토록 열심히 보여주려 했던, 그리고 대중이 믿고 싶어 했던 그 낙관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60년대 사회상은 미래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았습니다. 60년대 스타트렉과 울트라맨, 그리고 닥터후로 대표되는 낙관적인 SF는 5가지의 사회적인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첫 번째는 시스템이 가난을 박멸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당시 차이는 있었으나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복지가 비약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우선 미국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은 가난 퇴치를 위한 사회 복지의 확대를 가져왔고 영국은 1940년대부터 확립된 사회복지체제가 60년대에 빛을 발했습니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61년에 전 국민 의료보험과 연금 체계가 만들어졌죠.
이러한 전 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들 사이의 사회 안정망에 확충은 국가가 적극적인 개입으로 빈곤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미래 사회는 스타트렉에서 그리는 것과 같이 모두가 존중받는 복지 국가의 완성형이 될 것이라 상상하게 만든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지의 확대와 미래 사회에 대한 기대는 두 번째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두 번째 토대는 바로 멈추지 않는 경제 성장의 그래프입니다. 60년대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였습니다. 물론 서구 기준에서요. 중산층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면 내 차와 내 집을 가질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풍요로울 것이라는 것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끊임없는 경제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원 고갈이라는 공포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토대는 한계가 보이지 않는 자연과 에너지입니다. 60년대는 아직 환경 운동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62년 침묵의 봄이라는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를 담은 책이 출판되었으나 그 정도로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엔 부족했습니다. 1970년이 돼서야 지구의 날이 지정되고 전 세계적으로 환경법이 제정되었죠. 그리고 1973년 시작된 오일쇼크는 사람들의 자원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60년대, 사람들은 지구의 자원이 무한하다 생각했고 성장의 대가로 환경이 파괴되며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에너지 고갈을 걱정하지 않았기에 SF 속 우주선들은 연료 걱정 없이 은하계를 누빌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네 번째 토대는 구원자로서의 과학 기술에 대한 신뢰입니다. 오늘날 기술이 빅브라더로 대표되는 감시나 AI의 반란이란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당시의 과학은 순수한 빛이었습니다. 인류가 달에 발을 내딛는 광경을 목격한 대중에게 불가능이란 없어 보였습니다.
과학은 기아와 질병을 극복하고 인류를 신의 영역으로 데려다줄 도구였으며 이러한 기술 만능주의는 미래를 장밋빛으로 칠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우주개발의 축소, 그리고 환경 파괴로 의한 기술 불신은 이러한 믿음이 부서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섯 번째 토대는 합리적 이성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확신입니다. 진 로덴베리가 설파했듯 당시 지식인들은 인간은 교육과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엘리트(관료)들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이성이 감정을 통제한다면 전쟁과 갈등은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스타트랙의 승무원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바로 이 성숙한 인류에 대한 60년대의 믿음을 시각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베트남 전쟁의 심화와 72년 대통령이 도청을 지시한 사건인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 믿음을 부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회의 엘리트들이 모인 정부에서 전쟁을 장기화시키고 최고의 엘리트인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니깐요.
지금까지 우리는 60년대 낙관론을 지탱했던 5가지의 현실적 토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 시절 우리가 TV 속 유토피아에 그토록 매달렸던 이유를 전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풍요로운 경제나 과학 기술의 혜택보다 더 강력한 동기 즉, 생존을 위한 본능이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60년대의 TV SF는 동시대 작가 필립 K. 딕이 말한 머서교(다음장에 설명하겠습니다.)와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것이 거짓된 위안일지라도, 사람들은 브라운관 앞에서 서로의 믿음을 공유하며 핵전쟁이라는 차가운 공포를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화려한 낙관주의 이면에 숨겨진 가장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공유된 환상의 의미를 추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