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 팬덤의 기원에 대한 고찰 1부

은하영웅전설을 중심으로

by SF mania

분석을 시작하기 전, 이 글이 한국 SF 팬덤의 역사를 다룸에도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 필립 k. 딕과 같은 영미권 SF 작가들이나 스타트렉, 스타워즈, 닥터후와 같은 서구권 프랜차이즈들보다 일본 애니와 그 팬덤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의문을 느낄 독자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SF 팬덤이 실제로 형성되고 확장된 경로를 반영하였기 때문입니다. 80년대, 90년대 한국에서 서구권 SF 소설과 드라마는 주로 일부 마니아층이나 번역서를 통해 제한적으로 소비되었고 팬덤으로서의 집단적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접근성, 유통, 지속성이 부족했습니다. 반면 일본 애니메이션, 즉 아니메와 만화 등은 해적판, 비디오테이프, pc통신을 통해 반복적이고 집단적으로 소비되었으며 설정 정리와 해석 및 논쟁을 중심으로 한 팬덤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한국 SF 팬덤의 담론은 이 과정 속에서 본격적으로 생겨났다고 저는 생각했고 은하영웅전설 역시 일본 애니 팬덤의 토양 위에서 정치적 철학적 작품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은하영웅전설, 통치 은영전은 한국 SF 팬덤계, 그리고 오덕계에서 빼놓고 설명하기 힘든 작품입니다. 대표적으로 나무위키의 전신인 엔하위키는 건담 및 은영전의 설정을 정리하기 위해 등장한 사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두 작품과 관련된 문서의 양과 질이 엔하위키 초기 항목의 비중에서 압도적이었을 정도입니다. 엔하위키가 시작한 2007년 이전 세대의 은영전의 위상은 더 거대했습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해적판과 pc통신을 통해 은영전이 한국에 뿌리내린 시기에는 각종 대학교 인기 도서 목록 순위에 있었을 정도입니다. 특히 1997년 KAIST 도서관 교양서적 1위를 차지하고 2001년에는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2000년대 중반까지 크나큰 인기를 누려왔고 지금도 상당한 팬덤을 갖고 있는 소설입니다.


[대전/충남]과기원생들 「무협소설」 대출1위|동아일보

신문보기 | 동아디지털아카이브(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 정리, 원문 읽으려면 동아일보 로그인 필요)


여러 사이트를 찾아본 결과 당시 출판계에서 여러 출판사의 판본을 합칠 시 수백만 부가 팔렸을 것이라는 추산과 pc통신 시절 글 들 중 상당수가 은영전과 관련된 글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몇몇 정치인들이 은영전을 대여섯 번 정도 탐독했다고 직접 밝히거나 은영전 대사를 인용했던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8대, 9대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재임했고 현재 제18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인 김성식 부의장은 2016년 4월 19일 방영한 100분 토론 719화에서 은영전 주인공 양 웬리의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저희에 대해서 우려하시는 부분도 있으시지만, 뭐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유명한 정치소설에 보면 양 웬리가 이런 말을 하지요.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공존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민주주의의 정수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판매량은 확실한 통계가 아니고 pc 통신 시절 글은 지금 와서 볼 수 없으며 정치인들의 말은 가볍게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은영전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80,90년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21세기 사람이라 은영전이 과거 얼마나 대학가에서 많이 읽혔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 은영전이 대학가에서 나름 유행했고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인기와 고평가를 동시에 얻어낸 작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에 와선 은영전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비판적으로 읽는 독자들이 늘어났음을 심심치 않게 느낍니다. 예를 들자면 은영전에 대해 일본식 민주주의의 한계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말하거나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중2병 허세로 가득하고 작품의 정치 담론이 너무나도 유치하다는 비판들이죠. 이러한 비판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태도가 과거 은영전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신격화가 만들어낸 반발, 그리고 한국 SF 팬덤계와 서브컬처계가 조금씩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게 된 태도라 생각합니다. 80년대와 90년대 은영전이 출판될 당시에는 한국의 SF가 막 태동하거나 거의 없던 시기입니다. SF 소설가 듀나가 글을 쓴 것도 94년부터이죠. 복거일이나 문윤성 같은 SF작가들도 있었으나 이들은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단편적이란 느낌이 강했습니다. 물론 찾아보면 훌륭한 SF 소설가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단행본이 나오지 못하고 잊힌 작가들입니다. 또한 복거일과 문윤성의 작품들은 순문학에 좀 더 가까워 팬덤을 형성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실상 한국 SF 팬덤의 역사는 pc 통신 시절 해외 고전 SF소설의 번역과 듀나 등 pc통신과 함께 탄생한 SF 작가들, 그리고 은영전, 건담, 에반게리온 등 일본 SF 서브컬처들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 SF 팬덤은 국내에 번역이 되지 않은 해외 소설을 번역해서 읽어야 했고 일본 애니를 보기 위해선 고가의 장비들이 필요한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비디오테이프와 같은 장비들이죠.


그로 인해 한국 SF 팬덤은 필연적으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 그리고 소위 말하는 잘 사는 집안의 자식들인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또한 이런 대학생들은 은영전, 그리고 더 나아가 SF란 장르에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파운데이션이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정치적, 철학적으로 읽히는 SF 소설, 그리고 영화들도 있으나 장르적 재미나 카타르시스가 더 중점인 SF 작품들에도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주세기 건담 중 기동전사 제타 건담의 티탄즈와 에우고의 내전을 군부독재에 대한 투쟁으로 해석하거나 에반게리온을 철학에 집착해서 해석하고 은영전을 민주주의의 딜레마와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룬 걸작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죠.


이러한 해석을 하는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특정한 정치 철학적 해석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이후 등장한 모에 그림체와 가벼운 일본 애니를 선호하는 팬덤을 단순한 취향 차이로 보지 않고 열등한 작품을 소비하는 집단으로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우월감으로 이어졌고 은영전을 비롯한 일부 작품들을 지적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80년대 90년대 은영전을 소비한 사람들은 과거 읽었던 은영전이 완벽한 작품이라는 환상을 만들었고 현재에 은영전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불어 일으키거나 명성만큼은 아니었다는 역효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은영전을 비난하는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은영전이 완벽한 작품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재독 하다 과거에 보였던 지나친 찬양이 부끄러워 일부로 더 작품을 비난하는 경우가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 경우는 은영전 팬덤이 보였던 지나친 작품에 대한 찬양과 타 작품들을 내려치는 것에 대한 반발의식으로 작품과 팬덤을 동시에 비난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팬덤이 보인 작품에 대한 찬양으로 궁금증으로 읽게 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치밀하지 않은 설정, 평면적인 캐릭터, 정치 묘사의 부족함으로 인해 실망해서 작품을 저평가하는 경우지요. 그런데 이런 비난 자체가 저는 논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은영전은 정치 SF 소설이긴 하나 순수 정치 철학 텍스트가 아닙니다. 실제 정치와는 다른 단순화된 우화로서의 정치를 그려낸 것입니다. 따라서 지나친 인물 중심 전개와 몇몇 주요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두고 작가가 엘리트주의를 의도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작품을 오독한 거라 생각합니다. 은영전은 사실 정치의 비중이 좀 클 뿐인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소설, 즉 스페이스 오페라에 가깝습니다. 은영전은 일본에서는 라이트 노벨의 원형쯤 되는 소설로 여겨집니다. 라이트 노벨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을 저는 등장 캐릭터에 덕질을 할 수 있는 구조라고 봅니다. 은영전 또한 작중 정치 묘사가 나오나 결국에는 양 웬리를 비롯한 라인하르트 폰 로앤그람,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율리안 민츠 등 여러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하고 이들을 팬덤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캐릭터의 매력이 가장 중점이기에 은영전에서 개인의 선택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보이는 것은 서사적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 웬리가 항상 역사를 바꿀 선택에 놓이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죠. 그리고 캐릭터의 매력을 유지해야 하기에 양 웬리의 선택은 때때로 이상적이나 현실적이지는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현실 정치의 합리성을 소설에서 재현시키기보다는 독자가 캐릭터의 매력과 도덕성, 이상을 계속해서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서사적 선택입니다. 대표적인 서사적 선택의 예시로는 양 웬리가 라인하르트를 포획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정치인들의 명령에 다라 포기하는 장면이 있겠네요. 이 선택은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나 작품이 구축한 양 웬리라는 캐릭터의 도덕성과 일관성을 보여주기에는 완벽한 선택이었습니다.


이처럼 은영전은 순수 정치 철학 텍스트라기보다는 우화로서의 정치극이 가미된 캐릭터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은영전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저는 은영전을 평가할 때 두 가지 축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장르물로서의 은영전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이며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펼치는 거대한 규모의 전쟁과 정치 드라마입니다.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 폰 로앤그람의 대결 구도,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충성과 비극,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의 냉혹한 합리성 등 각 캐릭터들이 가진 개성과 매력이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은영전은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작품입니다. 긴 호흡의 서사, 다채로운 캐릭터, 거대한 우주 함대 전의 스케일, 여러 음모와 갈등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서의 은영전입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분명 민주주의와 전제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대학생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자조하듯이 여기서의 생각은 학술적으로 엄밀한 정치철학이 아닙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정치체제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질문을 던져주는 수준에서 그칩니다. 민주주의가 부패하고 무능해질 가능성을 품고 있는, 즉 완벽한 체제가 아니나 그럼에도 전제정보다 나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훌륭한 한 초인의 완벽한 독재를 옹호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 한국의 일부 독자들은 두 번째 축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은영전의 정치적 담론을 현실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 여겼습니다. 그 결과 은영전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을 담은 심오한 작품이라는 과도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가 막 태동할 때라 정치적 담론에 목말라 있었고 SF라는 장르가 희소했기에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은영전이 애니메이션 매체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과 SF에 대한 당시 사회의 인식도 은영전의 확대 해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80년대 그리고 90년대의 사회적 시선은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은영전도 소설이기 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소설로서의 은영전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91년부터이나 애니메이션 판은 88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은영전 팬덤은 무단 불법 복사 비디오테이프, 소위 비짜 테이프라 불리는 버전으로 은영전을 처음 접했다고 볼 수 있지요. 물론 일본 원서를 구해보거나 일본에서 거주해서 은영전을 소설로 처음 접한 팬들도 존재할 수 있으나 대다수의 초창기 팬덤은 애니로 처음 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영전 팬덤 중 상당수는 불법 복사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와 경제력을 갖추었고 일본 문화에 대한 반감이 비교적 적은 대학생 층이었습니다. 이 대학생 층을 중심으로 한 팬덤은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을 싫어했고 그 인식에 대한 반발로 더욱 작품 속 철학과 정치적 요소에 집착하게 되었다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건담에서 정치적 철학적 요소를 강조하거나 에바를 중심으로 한 90년대 세기말 분위기에 대한 작품들에 대한 고평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거라 봅니다.


또한 SF 자체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 SF란 장르를 문학인들은 순문학보다 못한 하위 버전으로 보았고 더 나아가 비현실적인 장난같이 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SF 소설들은 철학적인 색채를 많이 띄는 작품들 뿐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84, 멋진 신세계, 우리들과 같은 디스토피아에 대한 담론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은영전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또한 SF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전제군주정 중 어떤 체제가 더 좋은 체제인지 묻는 은영전은 당시 애니메이션 팬덤과 SF팬덤이 자신의 취향을 오독하는 사회에 반박할 수 있는 좋은 예시였죠.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