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이 글은 1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eaea0576c003473/38
1부에서 저는 한국 SF 팬덤의 기원에 대해 다루었고 그 중심에는 은하영웅전설, 통칭 은영전이라는 소설이 있었다고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SF 그리고 애니메이션, 서브컬처 장르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과 그에 대한 반발로 한국 SF 팬덤이 작품의 철학, 정치적 측면에 좀 더 집착하게 되었다고도 했지요. 그리고 은영전에 한국 SF 팬덤은 철학적, 정치적 해석을 과도하게 많이 붙였고 그에 대한 반발로 은영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최근 들어 많아졌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케이스가 과연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SF에서만 나타나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대한 과도한 철학, 정치적 해석은 다른 국가, 장르에도 나타났습니다. 사실 과도한 철학, 정치적 해석을 나쁘게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그런 해석이 논리가 충분하고 작품을 왜곡하지 않는 한 작품을 더 다양한 시선으로 더 폭넓게 감상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그리고 그런 해석을 창작자가 싫어하며 철학적, 정치적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반지의 제왕의 J.R.R 톨킨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신화적,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는 반지의 제왕의 철학적, 학문적인 면을 파고드는 톨킨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런 톨킨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시대의 정치적 흐름, 시대의 분위기 등 시대정신은 작품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기호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작품에서 창작자의 의도뿐만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해석을 파격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창작자의 정답 찾기에서 벗어나 수용자가 새로운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창조적 유희로 비평을 만든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창작자가 새로운 작품을 낼 때 그 창작자는 완벽하게 독립된 개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또한 사회 분위기, 예술 사조, 각종 이념 등 여러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완성합니다.
롤랑 바르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기호로 읽었습니다. 이는 동시에 모든 작품들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생각합니다. 창작자의 의도만을 생각할 때에는 순문학이나 SF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분석 대상이 되고 웹소설, 펄프픽션, 라이트 노벨 같은 장르의 작품들은 분석 대상으로 보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웹소설, 펄프픽션, 라이트 노벨들을 각종 사회 분위기, 각종 이념이 낳은 결과물로 보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이런 작품들은 새로운 분석 대상으로 격상됩니다. 어쩌면 순문학보다도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는 대상이 될 수 있지요. 이는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예전에 60년대 SF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그 글의 1장입니다.
SF 드라마를 보다 스타트렉, 울트라맨, 닥터 후 등 60년대 SF들이 왜 밝고 진취적인 미래를 그린 패턴을 발견했고 거기서 시작해서 나름대로 확장한 글입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60년대의 분위기가 밝고 진취적인 SF를 만든 게 아닐까란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다 쓰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사람들의 반응들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창작자가 의도한 게 아닐 텐데 이런 분석을 하는 게 뭔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죠.
사실 이 말을 듣고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원작자의 의도가 아닌데 이런 시대정신을 분석하는 글을 써봤자 결국엔 무의미한 행위가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에서 저를 다시 펜으로 이끈 게 바로 저자의 죽음이었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주장처럼 창작자의 의도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창작자가 살아온 시대의 분위기, 그리고 수용자가 창작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중요한 부분이죠. 그리고 수용자가 창작물을 받아들일 때의 사회, 즉 수용자의 시대정신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시 은영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한국에서 은영전을 수용하던 80년대 후반, 90년대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꽃 피우던 시기였고 사람들은 정치적 담론에 목말라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SF와 일본 애니메이션(아니메) 팬덤은 아직 사회적으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기의 은영전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SF, 아니메 팬덤이 자신들의 취미가 성숙함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80년대, 90년대 한국 SF 팬덤은 은영전에 저자의 의도보다 과도한 정치적, 철학적 해석을 많이 붙였습니다. 이런 해석 자체를 틀렸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철학적 해석에 다나카 요시키(은하영웅전설의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이 해석을 바탕으로 다른 팬덤을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는 것은 틀린, 즉 잘못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한국 SF 팬덤은 은영전을 다른 팬덤을 공격하거나 은영전에 대한 해석을 모두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의도한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역풍으로 현재 은영전은 과도한 비난을 받게 되었죠.
그렇다면 한국 SF 팬덤은 이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저는 한국 SF 팬덤이 모든 해석은 자유롭게 펼치되 작가의 의도와 분리해서 해석하고 그 해석을 팬덤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겸손한 해석자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택스트 내부의 증거와 시대적 맥락을 확실히 갖춰야겠죠. 사실 이건 SF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팬덤에 대한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한국 SF 팬덤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과거 팬덤이 보였던 과잉 해석 그리고 그 해석을 기반으로 다른 팬덤을 공격하는 태도가 현재의 해석에 대한 거부감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정확하게는 과거 팬덤이 보여준 권위화된 해석에 대한 피로감이 거부감을 낳은 것이죠.
이런 피로감을 만든 대표적 사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기독교, 유대교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는 사해문서, 롱기누스의 창 등등 여러 종교에서 따온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사실 에반게리온이라는 이름 자체가 라틴어로 복음이란 뜻의 단어 evangélĭcus(에방젤리쿠스)에서 따온 겁니다. 그리고 이런 용어들을 기반으로 팬덤은 수많은 해석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해석에서 끝나지 않고 감독(안노 히데아키)이 엄청난 종교적, 철학적 의도를 숨겨놓았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리고 그 해석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보고 있는 작품이 위대한 철학이 숨겨져 있는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타 장르의 팬덤을 깔보는 경우도 꽤 자주 있었습니다. 사실상 자신의 취미가 이렇게나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지적 투쟁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소비된 겁니다.
그런데 2001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부감독 츠루마키 카즈야의 인터뷰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Tsurumaki's interview in Pulp - EvaGeeks.org Forum - an Evangelion Fan Community
링크는인터뷰의 영어 원문이고 아래는 인터뷰 일부를 번역한 겁니다.
"카즈야: 일본에는 거대 로봇물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다른 작품과 차별점을 가지기 위해 종교적인 주제를 이야기에 담고 싶었습니다.
기독교는 일본에서 흔치 않은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활용하는 게) 신비로움을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에바에 참여한 그 누구도 기독교인이 아니었어요.
작품에는 기독교적 의미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저 기독교의 상징을 사용하는 게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작품이 미국이나 유럽권에서 팔릴게 될 걸 알았다면
우리는 그 선택을 다시 고려했을 겁니다."
이 인터뷰는 저자의 의도에 집착하던 팬덤에 허탈감을 주었습니다. 동시에 에반게리온 팬덤을 비아냥 거리는 데에 좋은 소재가 되었죠. 그저 한낱 애니에 의도하지 않은 철학만 가져다 붙이는 자아가 비대한 팬덤이라는 비아냥에요.
하지만 저는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기호들이 시대적 불안(세기말)과 만나 어떤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실제로 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세기말적 종말론, 일본의 버블 붕괴 등, 고베 대지진 등과 맞물려 상당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제작진의 기독교적 상징을 사용하는 게 멋져 보인다는 허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거였죠.
이제 자신 혹은 팬덤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나 원작가가 모든 것을 의도했다는 식의 해석의 시대는 저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SF 팬덤은 은영전과 에반게리온의 사례를 통해 과잉해석과 해석을 휘둘러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태도의 문제점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자기 증명을 위한 해석의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하지만 해석 자체가 끝나는 게 아니라 해석을 권력으로 사용하는 태도가 끝나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장수와 번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