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포칼립스는 왜 아파트에 집착하는가 1부

한국 아포칼립스 장르와 아파트 그 상관관게

by SF mania

한국 아포칼립스 장르에서는 왜 아파트가 자주 나올까?


과거 영화 대홍수를 보다 문득 하게 된 생각입니다. 최근 한국의 아포칼립스 히트작들인 콘크리트 유토피아, 대홍수, 해피니스, 살아있다 등은 모두 고층 아파트를 주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사실 전 세계의 아포칼립스 장르를 살펴보면 각 지역마다 무대로 선호하는 장소가 조금씩 다릅니다.


서구권, 할리우드는 주로 광활한 황무지나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대표적으로 매드맥스나 폴아웃이 있지요. 또한 워킹데드처럼 교외 지역이나 감옥을 무대로 삼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다면 일본과 중국은 어떨까요? 인구 밀도가 높은 거대 도시 자체가 붕괴하는 모습을 주로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아키라와 아이 엠 어 히어로, 중국의 유랑지구가 있겠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영원한 항해자 에테르나우타처럼 익숙한 일상의 거리에서의 고립을 다루거나 영국의 28일 후처럼 텅 빈 대도시(런던 거리)를 강조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아포칼립스물은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취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파트란 건물 형태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국에 아파트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도 이유겠지만 저는 여기에 더 깊은 이유가 숨어있다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저는 설국열차나 부산행에 등장하는 기차들이 구조적으로 이 아파트도 동일하다고 주장하려 합니다. 기차는 사실상 수평으로 눕혀 놓은 아파트와 다름없기 때문이죠. 지금부터 왜 한국의 SF 아포칼립스가 생존자들을 콘크리트 상자(아파트)에 가두는지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한국의 아포칼립스물은 좀비(살아있다), 대지진(콘크리트 유토피아), 홍수(대홍수), 빙하기(설국 열차) 등 다양성은 할리우드 못지않습니다. 하지만 다루는 장소는 아파트, 혹은 아파트와 비슷한 기차라는 공간을 항상 택해 왔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모든 건물이 무너진 세계에서 홀로 서있는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합니다. 살아있다는 좀비 사태로 아파트에 고립된 등장인물들의 탈출기를 그립니다. 해피니스 또한 아파트 배경의 좀비 아포칼립스 물이며 대홍수도 아파트에서 대부분에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설국열차나 부산행도 아파트와 비슷하게 작용하는 기차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아파트에 집착할까요? 지금부터 그에 대한 5가지 이유를 제 나름대로 설명해보려 합니다.


1. 아파트가 단순히 많아서

일단 당연한 이유입니다. 한국엔 아파트 거주비율이 평균 50퍼센트를 넘길 정도로 일상적인 거주형태이며 국토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아파트 비율이 낮은 제주특별자치도도 25.7퍼센트 정도이며 가장 높은 세종시는 80퍼센트를 넘기죠.(2024년 기준). 아포칼립스 물에선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붕괴된다는 대비를 자주 활용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일상적인 아파트를 무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2. 한국 아포칼립스의 주 소재로 인해서

한국 아포칼립스물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문제를 자주 다룬다는 것이죠. 콘크리트 유토피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아파트와 내 집마련에 대한 집착, 공동체의 폭력성과 선동 등 여러 사회비판적 요소를 다뤘지요. 이는 할리우드의 아포칼립스 물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할리우드는 매드맥스처럼 오락적인 측면에 좀 더 집중하거나 혹은 인간본연의 비판에 초점을 맞춥니다. 대표적으로 미스트는 사이비종교와 선동의 이야기가 나오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우주적 공포를 맞닥뜨린 한 개인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더 중점으로 두었습니다.

물론 칠드런 오브 맨, 새벽의 저주처럼 사회문제를 다루는 아포칼립스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칠드런 오브 맨은 사회비판이 주 테마라기보다는 결국 인류라는 종 그 자체의 미래를 묻는 내용으로 끝내는 느낌이었죠. 또한 새벽의 저주도 사회비판보단 뛰어다니는 좀비와 생존 드라마, 그리고 액션에 좀 더 초점을 둔 느낌이었습니다.

이처럼 할리우드가 장르 자체의 재미, 인간 본연에 대한 비판이나 새로운 느낌의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다룹니다. 영화 살아있다는 젊은 세대의 고립과 탈출 및 연대라는 사회적 주제를 다뤘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설국열차와 부산행이 있습니다. 이 둘은 기차를 배경으로 활용했으나 기차라는 공간 그 자체가 아파트와 유사성이 있습니다.

설국열차는 머리칸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꼬리칸은 차별받으며 착취당한다는 설정입니다. 이는 현실에서 아파트 층수, 평수 등으로 부의 기준을 판단하고 사회적으로 은근히 차별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부산행도 비슷합니다. 부산행은 달리는 열차에서 좀비를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앞 칸으로 이동합니다. 또한 좀비에게서 살아남는 과정 속에서 앞 칸을 몇몇 사람들이 독점하려 하고 약자를 내쫓기도 합니다. 부산행의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성장중심, 남성중심 세대의 자멸이 부산행의 종착역이라고 밝히며 한국사회에서 이념과 착취구조를 상징하는 여러 인물들을 기차에 태웠다고 밝혔죠.


연상호 “성장 중심 세대의 자멸이 〈부산행〉 종착역”


그리고 부산행과 설국열차 모두 기차의 칸이 나누어져 있고 이 칸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칸은 아파트의 층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칸 속 생존자들은 아포칼립스물의 아파트처럼 거주자들을 분리하고 출입을 통제하며 내부규칙을 세우고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부산행에서 기차의 머리칸으로 대피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생존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장면이 예시입니다. 그리고 설국열차에서도 머리칸, 가운데칸, 꼬리칸 모두 출입을 통제하고 공동체를 위해 내부규칙을 세우죠.


정리하자면 한국에서 기차를 배경으로 한 SF 아포칼립스물도 결국 아파트와 유사하단 겁니다.


그리고 아파트란 공간은 한국의 사회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입니다. 계급투쟁, 주민들의 배타성, 이웃과의 소통문제,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후폭풍 등등 현대 한국 사회가 담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를 응축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한국 아포칼립스물은 왜 이렇게 사회비판적 요소를 많이 다룰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나 제 생각으로 한국식 블록버스터 아포칼립스의 시작은 좀비 아포칼립스물 부산행이었다 생각합니다.


그전에 영화 감기가 2013년 개봉했으나 손익분기점인 370만 명을 넘기지 못했고 그렇게 큰 인기나 영향력을 가졌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에 반해 부산행은 천만관객을 돌파했고 기생충이 개봉하기 전 국외 수익도 한국 영화 중 1위였습니다.


이 부산행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비판적 요소를 많이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부산행이 이런 요소를 통해 국내외 평단에서의 호평과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고 이 특징을 나중에 나온 아포칼립스물들이 계승한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 등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3. 로케이션 문제 및 제작비 문제

한국에는 평야라고 할 곳이 별로 없습니다. 또한 사막은 아예 없고요. 이로 인해 다양한 장소에서 아포칼립스를 시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로 인해 제작진들은 도시를 배경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또 도시에서도 여러 사회문제를 다루기 쉬우며 일상적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아파트를 주배경으로 삼게 된 거죠.


또한 제작비 문제도 있습니다. 아파트를 무대로 촬영할 시 비용이 적게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파트 전체를 세트장으로 짓지 않는 한 기존의 아파트를 활용하면 될 테니깐요.


4. 접근성이 너무나도 좋은 산지

이것도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한국에 산이 많으니 산을 배경으로 아포칼립스물을 찍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한국의 산지는 너무나도 관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등산로는 항상 잘 정돈되어 있고 방향을 나타내는 표지판도 많습니다. 또한 등산객도 많고 야생동물의 위협도 없습니다. 일본에서 산에서 곰을 만나 목숨을 잃는 등산객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나 한국에선 그런 뉴스가 없죠. 지리산에 곰을 복원해서 풀어놨다고는 하나 아직 사고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걸 잘 보여주는 예가 한국의 산에서 길을 잃고 내려와도 결국엔 파전집이나 주점을 만나게 된다는 농담입니다. 과거 아버지가 했던 말인데 그만큼 산의 관리가 잘 되어있고 산 주위에 식당, 편의시설이 많으며 위험한 야생동물을 만날 일도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멸망한 세계 속 산에서 홀로 생존하며 가끔 야생동물과 싸우는 그런 아포칼립스물을 그리기는 힘듭니다.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개발되지 않은 산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엔 그런 산을 찾기 힘듭니다.


5. 아파트란 건물의 방어가 용이하단 특징

해외 아파트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아파트는 단지형태죠. 그러다 보니 입구 몇몇 개만 막으면 외부의 생존자나 좀비 같은 위협으로부터 충분히 거주민을 보호하는 요새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저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저는 아파트에 좀비가 쳐들어오면 어디를 막고 어디에 총을 설치해야 하는지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특징은 외부와 공동체와의 차이를 강조하여 공동체 의식을 높이거나 외부 생존자와의 갈등, 전쟁등의 전개에 유용합니다.


이렇게 총 다섯 가지의 이유로 인해 한국의 아포칼립스물은 아파트에 집착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파트 배경의 아포칼립스물은 해외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화 살아있다는 아직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전임에도 한국 콘텐츠로서 이례적으로 넷플릭스 영화 시청 순위 1위를 했었습니다.

한국의 아포칼립스는 일종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콘텐츠 창작자들에게도 한국 아포칼립스는 무조건 아파트다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버리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1부에서는 다섯 가지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국 아포칼립스 장르는 아파트란 장소를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창작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것 같다고도 했었죠. 2부에선 그 고정관념의 대표적 예시로 영화 대홍수, 그리고 아파트란 공간에서 탈피했으나 아파트에서 다루던 주제 자체에서는 탈피하지 못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해 다뤄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제 개인적인 메타해석과 한국 아포칼립스 장르가 앞으론 어느 장소를 배경으로 삼을지에 대해 간단한 탐구를 해볼 예정입니다.


읽어주신 분들에게 장수와 번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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