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모임 (Quiet Meeting)

- 토니 페허(Tony Feher)의 미니멀리즘에 대하여

by 이마지

반쯤 비어있는 물병, 싸구려 빈 바구니, 유리병의 뚜껑, 색이 바랜 동전들 - 쓸모없는 것들을 모아둔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토니 페허(Tony Feher)의 작품입니다.


Tony Feher, Untitled, 1996, Private Collection USA, Photo by Adam Reich


조용한 모임 (Quiet Meeting)


미국 포스트-미니멀리즘 작가로 불리는 토니 페허(Tony Feher)의 작품에는 서사도 충격도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하는 미술가의 특별한 기술이라든가, 상어의 몸을 반으로 갈라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도 없습니다. 작가의 작품에는 그저 흔한 물건들을 특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의 작품에서 물건들은 이유 없이 조용히 모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울 오스트로(Saul Ostrow)비평가는 페허(Feher)의 작품을 식탁 미니멀리즘(Kitchen-table Minimalism)¹ 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 그의 작품들은 흔한 물건들이 모여 자신들의 무-쓸모함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Tony Feher, Untitled, Circa 1992-3, Glass jar with metal screw lid, 98 objects arranged in an oval


저드 vs 페허 (Judd vs Feher)


1970년대 도널드 저드(Donald Judd)가 미니멀리즘의 문법으로 매끈한 알루미늄과 강철 같은 차가운 공업용 재료로 결점 없는 완벽한 질서와 엄격한 통제를 구축했다면, 그 이후 페허는 그것을 살짝 비틉니다. 이미 사용된 흔적이 있는 물건들은 자신의 위태로움과 가벼움 그 자체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냅니다. 저드의 상자가 영원불변의 기념비적인 무게감을 가진다면, 페허는 그 위에 오히려 취약함을 추가했습니다.


페허(Feher) 작품의 사물들은 각각 다르게 훼손되어 있습니다. 흔적을 가진 일상적 물건을 사용하는 그의 작품에서 사물들의 사적인 역사들은 그의 규칙적인 배열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합니다. 가장 적절한 물건들을 골라서, 서로를 조율한다는 표현을 쓴 작가는 마치 음악의 음계를 고르듯이 각 사물이 가진 비전형적인 상처들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운율을 만들어 내는지도 모릅니다.


(왼) Donald Judd, Untitled, 320 by 68.6 by 61cm (오) Tony Feher, Untitled, 2007-09, cardboard boxes



낫 씽 포 세일 (Nothing for Sale)


1996년도에 뉴욕 소호의 번화가에 위치한 뉴 뮤지엄(New Museum) 1층 창에 설치한 작품은 페허의 작품의 이 일면을 잘 보여줍니다. 상점들이 즐비한 쇼윈도들 사이에 위치한 미술관 쇼윈도에 작가는 다 쓰인 빈 물병들을 가득 매달아 두었습니다. 대낮의 햇빛 아래서는 거의 보이지 않던 쇼윈도는 밤이 되어 도시가 네온사인들로 가득하자 빈 병들이 주변 네온사인들의 빛들을 반사하게 되면서, 미술관 창은 오히려 전형적으로 반짝이는 쇼윈도로 변모하게 됩니다. 버려진 빈병으로 가득한 이 쇼윈도는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팔지 않음(Nothing for Sale)'을 광고하고 있습니다.


— 저녁이 되면, 텅 비어 보이던 창 안의 물병들이 다양한 빛을 반사하여 그 공간을 전형적인 반짝이는 쇼윈도로 변모시켰다 - 그 안에는 판매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²
(this glowing light converted the space into a quintessentially glittering shop window, albeit that offered nothing for sale)

- 발췌 Claudia Schmuckli, Russell Ferguson, 『Tony Feher』, p.24.


Tony Feher, Installation view of Broadway Window Project,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1996 ³

세일(Sale) 광고가 가득한 도시 뉴욕 한복판에서 그의 태도는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한때는 판매와 소비의 순환 속에 존재했지만, 이제는 그 목적을 잃어버린 사물들 - 그의 작품은 그런 물건들에 대한 일종의 추모처럼 보입니다.

페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미국 텍사스 마르파에 위치한 도널드 저드(Donald Judd) 재단 (치나티 파운데이션(Chinati Foundation))에 설치한 그 작품들은 저드의 미니멀리즘을 배반하듯, 가볍고 위태로운 사물들을 장소에 배열해 두었습니다. 고요히 모여있는 작가의 사물들은 그렇게 쓸모 대신 기억되는 존재가 됩니다.



¹ Saul Ostrow, “Tony Feher”, Bomb Magazine, January 1, 2013, https://bombmagazine.org/articles/2013/01/01/tony-feher/

² Claudia Schmuckli, Russell Ferguson, 『Tony Feher』, p.24.

³ Claudia Schmuckli, Russell Ferguson, 『Tony Feher』, p.24.

(도서 『Tony Feher』, Claudia Schmuckli, Russell Fergu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