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카페로 갑니다

5,000원으로 채우는 오늘

by 이글이글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허세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커피 한잔의 가격은 한 끼 식비와 맞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학생 때는 학교에 가고 과제를 하면, 그렇게 주어진 하루를 살면 그걸로 하루가 충분했다.


그러나 직장인이 된 지금은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한다고 해서 오늘이 채워지지 않는다. 퇴근 후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주어진 그 밖의 무언가를 해야 오늘이 채워진다. 그건 아마 직장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내 삶에는 회사밖에 없을 것 같아서 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카페 배경음악, 사람들의 수다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가 만드는 일정한 파동 속에서 온전히 고립된다. 무음으로 뒤집어진 핸드폰과 로그아웃한 노트북 카톡은 침묵으로 나를 응원한다.

5,000원으로 채우는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일은 없다. 대체로 그날의 관심사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직무역량을 키우기 위한 책과 강의를 본다. 특별한 일이 있었거나 마음의 정리가 필요할 때 일기를 쓰고,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는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별일 없을 때는 관심 있는 소설책을 읽는다.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불현듯 찾아오는 어떤 정체 모를 불안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내 삶 대부분은 별생각 없이 평범하게 지나간다. 특별하지 않은,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산다. 그러나 그런 날이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문득 돌아본 나는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어가는데 아직 어른이 되기엔 너무 부족하다 느끼는 순간. 그럴 때 성실히 채워온 지난날들을 증거 삼아 스스로를 다독인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 있다.

오늘의 자신감은 과거의 성실함으로부터 온다

장소가 카페인 이유는 수많은 시행착오에 대한 결론이다.

집에는 안락함이 도처에 깔려있다. 세상 다정하게 '허리 아프지? 잠깐만 누워서 쉴래?' 그렇게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잠시 누웠다가 불 켜놓고 잠든 날이 얼마나 많은가.

도서관은 일상의 자연스러운 소리마저 소음이 되기에 숨 쉬는 것마저 숨 죽이게 되어 답답하다.

스터디룸 2~4인실 2시간 대여는 커피 한잔보다 더 비싸고 이용 시간이 유동적이지 않다. 미리 시간을 예약하고 예약한 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다. 일찍 가면 기다려야 하고 늦게 가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다.

회사에 남아서 공부하는 건 여러모로 선호하지 않는다. 일단 공간의 변화를 주고 싶다. 이미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회사에 있었다. 그리고 보통 늦게까지 남아있으면 다른 동료들이 관심을 보인다. '일이 많아요? 뭐 공부하세요?' 퇴근 후 나는 '다크 템플러'이고 싶다. 아무도 날 몰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냥 싫다. 이유는 없다.


한편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노력', '열심', '성실'이 미련으로 여길 때 안쓰럽고 안타깝다. 아마도 노력을 부정당해 보았거나 큰 벽 앞에 무기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꼭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를 채워야 한다고.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늦은 시간까지 카페에 있는 이 사람들도 어쩌면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채우러 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퇴근 후 카페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