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유독 감정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보수 진영은 NLL을 피로 지킨 불가침의 선으로 신성시하고,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국제법적 근거가 취약한 일방적 선포에 불과하다며 재검토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 두 입장 모두 NLL이 놓인 역사적 맥락과 전략적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절반짜리 분석에 그친다. NLL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감정적 민족주의도, 추상적 국제법 원칙도 아닌, 1953년 정전 직전의 냉혹한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한반도 주변 해역의 사정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유엔군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고, 북한 연안의 크고 작은 섬들은 물론 압록강과 두만강 하구 인근까지 유엔군의 통제 아래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정전이 이루어질 경우 자국 해안이 사실상 포위되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영토와 영해를 획정할 경우 북한은 서해와 동해 모두에서 독자적인 해상 접근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이는 북한이 최종 협정 타결에 극렬히 저항한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 유엔군은 협상 과정에서 북한 연안의 섬들 대부분을 포기하고 서해 5도. 즉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만을 담당하에 두는 것으로 대폭 양보했다. 이 양보가 정전협정 타결을 가능하게 한 핵심 조건 중 하나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해상 군사분계선에 대한 합의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엔군은 3해리 영해를, 공산군 측은 12해리를 주장하며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정전협정이 서명되었다. 합의의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1953년 8월 정전협정 체결 직후 북방한계선을 선포했다. 이 선은 본질적으로 "유엔군 및 국군은 이 선 이북으로 북진하지 말라"는 내부 지침이었다. 상대방과 합의한 경계선이 아니라 자국 병력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는 명령이었다. 따라서 NLL이 정전협정 본문에 명기되지 않았고, 북한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엄밀히 말해 맞다. 이 점에서 헨리 키신저가 1975년 기밀 외교 전문을 통해 NLL이 국제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내부적으로 지적한 것이나, 한국 내 국제법 학자들이 NLL의 법적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법적 정당성의 문제와 현실적 필요성의 문제는 별개다. 합의된 해상 분계선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 함정이 동일한 해역을 자유롭게 항행한다면 우발적 교전은 필연에 가깝다. NLL은 그 공백을 메우는 기능적 역할을 했고, 실제로 북한은 1973년까지 약 20년간 이 선을 실질적으로 준수했다. 법적 서명이 없더라도 20년에 걸친 행동적 묵인은 국제관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무게를 갖는다. 이 시기 북한이 NLL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역설적으로 이 선이 북한에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NLL이 그어진 시점의 출발 조건을 고려하면, 이 선은 북한에 상당히 유리한 결과물이다. 유엔군이 모든 해상 자산을 장악한 상태에서 협상이 시작되었고, 북한은 연안 섬들 대부분을 돌려받았다. 동해의 NLL은 육상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을 위도에 평행하게 그은 선으로, 북한에 유리하게 획정되어 있어 동해에서는 남북 간 해상 충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북한이 NLL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못하고 주기적인 도발과 명목상의 부정을 반복하는 행태는 이 선을 실제로 뒤집을 의도가 있기보다 협상 레버리지로 유지하려는 전략적 계산에 가깝다. NLL을 완전히 인정하는 순간 그것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사라지고, 재협상이 열릴 경우 동해 NLL 등 현재 북한에 유리한 조건들도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라갈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NLL은 그어져선 안 되었던 선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선의 설정 자체는 불가피했다. 합의 공백 상태에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기준선은 필요했고, 당시 조건에서 유엔군이 이를 설정한 것은 합리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선의 획정 위치는 국제 해양법 원칙보다는 전쟁 중 군사적 우위의 동결에 가깝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NLL은 더 잘 그어질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선이다. 절차적 정당성의 결함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결함은 지금도 유효한 약점으로 남아 북한이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드는 카드가 된다.
결국 NLL 문제의 핵심은 법리적 완결성이 아니라 현실적 대안의 부재에 있다. 현시점에서 NLL을 재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법적 정당성의 회복이 아니라 안보 구조의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십 년간 쌓인 실효적 운용의 현실, 서해 5도 방어선과의 연계, 재협상 과정에서 발생할 협상력의 비대칭성을 고려하면 현상 유지 외에 한국으로서 취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NLL은 완벽하게 정당한 선도, 폐기되어야 할 불법적 선도 아니다. 불완전한 역사적 조건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선이며, 그 불완전함을 인식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선이다. 그것이 이 문제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