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투표방식을 제안함

by Edward Alistair Langford

선거철이 되면 한국의 유권자들은 묘한 압박감에 시달린다. 누가 당선될 것 같으니, 그쪽에 표를 던져야 한다는 말, 저쪽보다는 이쪽이 그나마 낫지 않느냐는 말, 혹은 지지하는 당의 후보라면 무조건 찍어야 한다는 말. 이 모든 논리가 선거 직전 수 주 동안 유권자의 판단력을 서서히 잠식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투표소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보고 그 이름에 도장을 찍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채 손을 뻗는다. 이것이 한국 선거의 고질적인 풍경이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한국의 투표 행태는 오랫동안 공약이 아닌 다른 것들에 의해 결정됐다. 후보의 외모, 소속 정당의 색깔,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오, 그리고 차악론이라는 이름의 체념적 합리화가 그것이다. 차악론은 특히 교묘한데, 그것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유권자가 자신의 기준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논리다.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차악이 정말로 차악인지를 제대로 따져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공약 중심 블라인드 투표 방식을 제안한다.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각 후보의 공약을 선관위 공식 등록 공약이나 선거 공보물 기준으로 수집한다. 이때 출처를 단일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SNS 발언이나 유세 현장의 즉흥적 발언은 배제하고, 공식적으로 등록된 텍스트만을 사용한다. 그다음 후보의 이름과 소속 정당을 가린 채 공약의 순서를 무작위로 섞는다. 이 상태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미리 설정한 기준에 따라 각 공약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공약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한 뒤, 그 후보에게 투표한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방식이 완전히 객관적인 투표를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평가 기준을 설정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유권자의 가치관을 반영하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투표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하려는 것은 객관성의 달성이 아니라, 정당 브랜드와 후보 이미지라는 외피가 판단을 오염시키기 전에 공약의 내용 자체를 먼저 들여다보도록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물론 이 방식에도 한계는 있다. 공약은 의도의 선언이지 이행의 보증이 아니다. 좋은 공약을 내건 후보가 반드시 그것을 실현할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2단계 평가가 필요하다. 공약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 평가를 마친 뒤, 후보의 신원을 공개하고 과거 공약 이행률, 원내 기반, 재원 조달 계획의 현실성 같은 항목으로 보정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지방선거의 경우에는 해당 공약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실정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추가 기준으로 반영해야 한다. 지역의 산업 구조, 인구 구성, 재정 여건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수록 이 기준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평가 항목을 설계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공약의 서술이 얼마나 유려하고 구체적인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보좌진과 싱크 탱크가 충실한 후보가 유리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그보다는 내가 중시하는 문제가 실제로 해결될 수 있는지, 재원의 출처가 명시되어 있는지, 기존 법·제도와 충돌하지 않는지 같은 내용 중심의 체크리스트로 구성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후보마다 공보물에서 강조하는 분야가 다를 수 있으므로, 평가 영역을 먼저 고정해 두고 각 후보의 공약에서 해당 영역을 추출하는 방식을 택해야 분량의 차이로 인한 왜곡을 막을 수 있다.


이 방식을 두고 비현실적이라거나 대선이나 총선 같은 큰 선거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백만 표 가운데 한 표가 당락을 바꿀 확률은 통계적으로 극히 낮다. 그렇다면 그 한 표의 진짜 의미는 당락 기여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에 대한 신호의 발신에 있다. 그 신호를 정당 색깔이나 진영 감정이 아닌 공약의 내용으로 보낸다는 것은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습관으로 작동한다. 유권자가 어떤 기준으로 투표하느냐가 결국 어떤 정치인이 살아남느냐를 결정한다. 공약을 먼저 읽고, 기준을 미리 세우고, 이름을 나중에 확인하는 이 작은 순서의 변화가 한국 선거 문화에서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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