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전쟁에 우리 군인을 보낼 이유가 있는가

by Edward Alistair Langford

트럼프가 한국에게 이란 전쟁을 위해 호르무즈 해협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군함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동맹국이니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일부는 대한민국이 6·25 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도 한다. 나는 이 논리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대한민국의 동맹국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번 전쟁이 올바른 전쟁인지 아닌지도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훨씬 단순하다. 이건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6·25를 거론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시 유엔군이 참전한 건 한국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침략을 당한 피해국이었고, 냉전 구도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서방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만약 그때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 먼저 침공한 가해국이었다면 유엔군이 과연 왔을까? 자신 있게 "그래도 왔을 것"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6·25 참전은 무조건적 우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침략을 당한 전쟁이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2026년 2월 28일 이란을 선제공격했다. 정권 교체를 목표로 삼은 공세적 전쟁이다. 이란이 먼저 미국 본토를 공격한 것도, 한국을 위협한 것도 아니다. 집단자위권이 발동될 구조 자체가 없다.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한국이 참전해야 할 근거가 없다.


설령 일부에서 주장하는 미국이 한국에게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치자. 그렇다고 부모가 "같이 싸우러 가자. 그러나 죽을 수도 있다"라고 했을 때 자식이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가. 부모에 대한 감사와 부모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파병은 국군 장병을 교전 해역에 보내는 결정이다. 기뢰가 실제로 부설된 해협에 군함을 보내면, 누군가는 그 위험에 처하게 된다. 트럼프 본인은 "드론, 기뢰, 단거리 미사일 공격이 쉽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위험을 감수할 명분이 우리에게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또한 트럼프라는 상대의 일관성을 봐야 한다. 지난 2주간의 발언 흐름을 보면 3월 3일에는 "전쟁에서 이겼다"라고 했다가 9일에는 "이란을 공격해야 한다"라고 했다. 13일에 또 "이겼다"더니 14일에는 "도와달라"고 했고, 15일에는 "안 도우면 기억하겠다"라고 협박했다. 그러더니 16일 하루에만 "도움이 필요 없다.", "테스트였다", "나토에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어긋나는 말을 쏟아냈다. 17일에는 나토 도움이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더니, 18일에는 다시 우방국 협조를 요청했다. 이런 사람의 요구에 우리 군인을 사지에 보내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완전히 모르는 척할 수 없다는 현실도 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가 한국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미국과의 관계가 방위비 분담, 관세, 대북 확장억제등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만약 어떤 형태로든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동맹 의리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의 문제여야 한다. 관세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 방위비 분담 양보, 주한미군 감축 불가 확약 등. 이런 반대급부를 명시적으로 받아내고 움직여야 한다. 조건 없이 보내주면 미국은 공짜로 명분을 챙기고 우리는 인명 리스크만 떠안는다.


외교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가자는 곳은 강남도 아니다. 언제 기뢰에 걸릴지 모르는 해협이다. 그리고 친미냐, 반미냐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을 얼마나 잘 이용해서 국익을 극대화하느냐의 문제다. 트럼프 본인도 동맹을 철저히 거래의 관점으로 봐왔다. 그렇다면 우리도 같은 눈높이로 판단하면 된다. 감정이 아니라 국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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