淡然書 | 담연서
고요히 머무는 마음의 결을 따라,
사유가 천천히 번져가는 글.
감정의 파문이 잦아든 자리에,
언어는 조용히 빛을 머금는다.
완벽할 수 없어도,
그 평온한 여운을 담연히 써 내려간다.
2025.10.27
부모님 댁에는 손바닥보다 큰 크기의 낮고 널찍한 초벌구이 도자기가 있다.
식탁 위, 때로는 어항 위처럼 내가 방문할 때마다 자리를 달리하는 어딘가 어설픈 그것은, 어린 시절 부모님, 오빠와 놀러 갔던 근처 예술회관에서 내가 도예 체험으로 만든 것이었다.
도예가가 아이의 손을 잡고 그릇을 빚는 작업이었기에 스스로 만든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체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차갑고 미끌미끌한 점토가 손의 온기를 만나 초콜릿 코팅처럼 녹아들던 그 감촉, 이내 흙이 내 손에서 살아 움직이듯 모양을 갖추어 가는 걸 보면서, 손끝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그 감각의 기억은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8년째 매일같이 손으로 일기를 쓴다.
그 일기장에는 때론 초등학생 시절처럼 하루를 그대로 적어 내려가기도 하고, 하루의 기쁨과 슬픔, 고민,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부끄러움까지 솔직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가끔 다시 읽는 날에는 나 스스로가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엿보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라고 했던가.
과거의 그때 기분을 어렴풋이 느끼며, 새로운 문장과 생각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내게 브런치는 또 하나의 일기장과 같다.
다만 침대맡에 있는 일기장과 달리, 이곳의 글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며 글을 쓰는 나 스스로를 보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도자기를 빚던 기억이 맞물린다.
도자기가 완성되기까지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흙을 준비하고, 빚고, 말리고, 초벌구이를 거쳐 장식을 하고, 코팅을 한 후 다시 한번 구워낸다.
나에게는 아직 발행되지 않은 채 저장목록에 오롯이 잠들어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흙덩이처럼 정성스럽게 빚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글들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 또한 여러 번 손끝에서 다듬어지고, 세심하게 덧붙이고, 구워져 완성된 하나의 도자기 같은 글이다.
글은 빚은 사람에 따라 독자들에게 새로운 형태로 태어난다.
마법이 펼쳐진 세상에서는 화려한 광경이, 살인사건이 일어난 배경에서는 긴장과 숨죽임이 흐르며, 우주를 누비는 이야기 속에서는 보랏빛과 남색이 뒤섞인 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박힌다.
누군가 단어를 고르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매만지고, 물레를 돌려 한 자 한 자 쌓아 올린 글들은 내 머릿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낸다.
글은 만질 수 없고, 상상은 공상처럼 흐릿하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재료를 담아 빚고, 시간이라는 열로 구워낸 글은 내 손길이 닿은 도자기와 닮았다.
그릇마다 다른 색을 띠듯, 글도 그날의 감정을 머금는다.
따사로운 햇빛을 품은 노랑, 심연과 같은 짙은 푸른색, 때로는 수줍음을 담은 말간 연분홍빛으로.
그렇게 내 안의 색으로 구워진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오늘도 나는 하나의 글을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