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연서淡然書] 모든 것에는 향기가 있다

by Eanah Gon 이아나


淡然書 | 담연서

고요히 머무는 마음의 결을 따라,
사유가 천천히 번져가는 글.
감정의 파문이 잦아든 자리에,
언어는 조용히 빛을 머금는다.

완벽할 수 없어도,
그 평온한 여운을 담연히 써 내려간다.

2025.10.26


나는 일본에서 생활하며 이 계절에 풍기는 금목서의 향을 참 좋아한다.

출퇴근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오가는 그 짧은 시간, 바람을 가르며 스치는 그 향이 느껴질 때면 계절이 어느새 깊어졌다는 걸 실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의 나는 이 향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몇 년 전 지금과 같은 계절, 업무 차 만난 어느 카메라맨과 쉬는 시간에 대화를 나누다가 그분이 “금목서 향을 참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일본 생활 중 들은 생소한 단어에 나는 그게 뭔지 물었고, 그분은 “가을에 향이 짙게 나는 꽃이에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우리는 이내 오후 일정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꽃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에게 금목서의 존재는 그대로 내 머릿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 날 외부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회사 앞의 어떤 식물을 가리키며 그분이 말했다.

“이게 금목서예요, 향 느껴지시나요?”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금목서의 향’이라는 세계에 닿았다.

부쩍 짧아진 해를 느끼며 짙은 푸른빛의 공기가 가라앉은 이른 저녁, 회사 앞에 단조로이 피어 있던 금목서를 처음 인식했던 그 순간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갑자기 형태를 가진 듯, 공기 속에 부유하던 색이 온도를 얻은 듯, 가느다란 바람결이 내 감각의 안쪽까지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가을이 되면 내 주변 곳곳에서 금목서의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향하는 길마다, 누군가가 뿌린 향수 내음 속에서도 그 향이 겹쳐 있었다.

심지어 회색으로 메워진 공사현장에서도 근처 들숲에 피어 있는 말간 샛노란 향이 먼지 사이로 번져왔다. 그 향은 공기보다 가볍게, 그러나 기억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내 곁에는 언제나 이렇게 많은 금목서의 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 몇 년 전 그분과의 대화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이 향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가까이에 있었지만 느끼지 못한 아름다움처럼, 향은 언제나 조용히 내 곁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커피 향이다.

누군가 먼저 출근해 커피를 내렸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묘한 안도감이기도 하다.


주택가를 걷다 보면 골목 사이로 스며 나오는 냄새가 있다.

그 향이 낯설지 않아 예전에 먹었던 정어리 통구이의 냄새인지 고등어의 냄새인지 가볍게 고민한다.

동시에 예전 지인과 함께 저녁으로 생선구이를 먹었던 날의 기억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그날의 온기, 웃음소리, 식탁 위의 김이 향과 함께 스쳐 간다. 냄새는 그렇게 잊었다고 생각한 시간들을 다시 불러온다.


향은 내가 알든 모르든,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름을 몰라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며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이처럼 세상에는 언제나 수많은 향기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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