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연서淡然書] 완벽한 조각을 깎는 일

by Eanah Gon 이아나
淡然書 | 담연서

고요히 머무는 마음의 결을 따라,
사유가 천천히 번져가는 글.
감정의 파문이 잦아든 자리에,
언어는 조용히 빛을 머금는다.

완벽할 수 없어도,
그 평온한 여운을 담연히 써 내려간다.




2025.10.05


돌을 깎고 조각을 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내게, 어느 날 누군가가 탐스러운 최고급 대리석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평생 이 대리석으로, 당신이 좋아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사람을 조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아마 가장 먼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들이 지닌 가장 좋은 부분, 그들의 눈빛과 말투, 따뜻함, 그리고 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손끝으로 그려보지 않을까.

내가 느꼈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며, 그 기억들을 차가운 대리석 표면에 새기듯 조심스레 망치와 끌을 쥐고 깎아내며 형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작업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일만은 아니다.

평생에 걸쳐 완성해야 할 그 작품을 위해,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다시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던 사람의 그 모습이 사실은 온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동시에 내가 아름답다고 믿고 그들을 떠올리며 조각해 온 부분을 스스로 깎아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의 슬픔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내가 믿었던 ‘아름다움’이 부서지는 소리이자, 정성껏 다듬어온 조각을 내 손으로 상처 내야 하는 고요한 순간, 그건 곧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의 일부를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부드럽고 완벽한 대리석은 내 손길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망설임도, 욕심도, 미세한 떨림도 모두 남는다.

그래서 실수 하나하나가 흠집이 되어, 결국 그 흠집이 내 작업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에 내가 애정을 담아 정성껏 새겨 넣은 조각을 사소한 실수로 상처 내는 순간이 평생 여러 번 찾아올 것이다.

아무리 조심스러워도 나는 사람이고,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손을 멈출 수는 없다.

주어진 일을 위해 계속 깎는 과정 속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도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고, 그들 속에서 예상치 못한 빛을 보게 된다.

그 빛을 따라 조각을 이어가다 보면 조금씩 배워가고, 내 안의 기준이 바뀌어 가는 걸 느낀다.


가끔은 누군가가 내 작업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을 내세우고, 아무리 인간의 미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 한들 그건 말일뿐이며, 누가 아무리 설명해 준다 한들, 이건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고, 상처받으며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씩 새겨 넣는 나만의 작업이다.


결국 내가 깎고 있는 건 대리석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사람을 통해 배우고, 실망과 깨달음을 거듭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하나의 조각품이 만들어진다.

완벽한 사람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그 속에서 다듬어진 건 ‘나’였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평생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히며 다듬어지고, 때로는 스스로 깎아내야 하는 그 아픔을 견디며 조용히 자신을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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