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찾기, 보물찾기 _ 책 <제철행복>

by 김이안


웬만하면 책을 선물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선물할 때는 보통 누군가가 먼저 내게 책을 선물했을 때다. 요즘은 책 선물을 받는 게 귀한 일이다. 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 틈틈이 책을 읽는지도 파악해두어야 한다.


예전에는 책을 선물할 때, '나 그래도 조금 품위 있고 책을 종종 읽는 사람이야'라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게 마음 한 켠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내가 먼저 다 읽기보다는, 앞 뒤만 대충 훑어 읽고, 책 표지 디자인이 예쁘다 생각하면 그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 선물을 받아보니, 내 취향이 아닌 책은 좀처럼 완독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책과, 또 어렵지만 읽어내고 싶은 책들에게 선물 받은 책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책 선물을 할 때 '그 사람이 완독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띄엄띄엄 읽어도 괜찮은 에세이 책을 보통 선물한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으로 베스트인 책들. 한 꼭지 글, 꼭지글이 신선하고 인상 깊고 맛깔나게 다가오는 그런 에세이들을 고른다.


<제철행복>은 사시사철 책상 옆에 두고 읽기 좋은 책이다. 그래서 최근에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처음 이 책을 서점 매대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마음이 동했던 게 기억난다. '제철행복'이라니! 제철 과일, 제철 음식을 찾아먹는 것처럼 제철 행복을 때마다 발견한다니. 신선하고 신박하고 귀여웠다.


그동안 잠깐씩 궁금하기는 했다. 경칩 춘분 우수 같은 이런 절기들. 이런 단어들 속에 나름의 뜻이 분명 있겠지 하며 언제 한 번 찾아봐야지 하지만 금세 잊어버리는 이 절기들.


이 책은 그런 절기들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톡톡 튀고 상큼한 표현의 문장들이 곳곳에 담겨있다. '아 이 문장은 필사해놔야겠다 싶은 문장'들이 두 세 페이지 건너 계속 나오는 느낌이랄까.



봄이 왔음을 기념하는 나만의 음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커다란 꽃처럼 잎을 활짝 펼친 봄동을 사다가 겉절이를 하거나 쌉싸래한 달래장을 만들어 밥을 비벼 먹는 일.


나에게 봄은 이것으로 온다. 말할 수 있는 봄나물을 하나쯤 품고 사는 건, 새봄을 맞이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 있다는 것. 누가 뭐라 해도 봄은 그날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42p



뒷산에 오르면 아직 채도가 낮은 풍경 위로 진달래와 생강나무꽃이 분홍색과 노란색 점으로 콕콕 박혀 있다.


산을 내려와 개천으로 들어서면 매화와 산수유나무 꽃이 분홍색과 노란색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매화는 짙은 향기로 발길을 붙잡고, 산수유나무 꽃은 폭죽이 터지는 순간을 그대로 멈춰놓은 듯한 모양새로 눈길을 붙잡는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면 나무가 여는 고요한 불꽃놀이를 지켜보는 기분. 67p



분명 나도 봄동 겉절이와 달래간장밥을 먹어봤고, 진달래와 산수유나무, 매화를 알지만 이걸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들. 저자의 이런 싱그러운 문장과 표현력이 나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는 느낌이다.


이 책이 물론 내가 밑줄을 그으며, 수시로 찾아 읽는 애정하는 책이지만 그 친구 취향이 또 아닐 수도 있기에, 나는 가볍게 말을 건넨다.


'어 이거 냄비받침인데, 거실에 두고 쓰라고"


나에게는 베스트 책인데 혹시라도 부담될까 봐, 괜히 이런 말을 하며 책을 건네본다. 하지만 부담 없이 가볍게 책을 펼쳤다가 나처럼 작게 감탄하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읽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절기상 춘분. 춘분에 대한 글 중 마음에 쏙 와닿았던 부분이 있다. 바로 봄을찾기.



춘분이면 경칩에 깨어나 기지개를 켠 자연의 모든 것들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 무렵의 산책만은 다르다. 분명한 목적이 있다. 바로 '봄을찾기'


3월에 들어선 순간부터 숲이나 개천으로 나가서 꼭꼭 숨겨진 봄의 신호를 찾아내는 일. 62p



어렸을 때 소풍을 가면 선생님들이 미리 바위틈이나 덤불 속에, 소나무 가지 위에 하얀 쪽지를 숨겨두곤 했다. 시작신호와 함께 보물을 찾아 나설 때, 애타는 마음으로 구석구설을 살피다 마침내 하얀 쪽지를 찾아냈을 때, '뛸 뜻이 기쁘다'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처음으로 알 것 같았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로 돌아간 마음으로 봄의 풍경 속에 뛰어든다. 63p



하지만 이 무렵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의 쪽지는 버드나무에 걸려 있다.


다른 나무들이 아직 겨울눈 속에 이파리를 조금 더 보관하고 있을 때, 버드나무 만이 이르게 새순 같은 연둣빛 꽃을 틔운다.


다들 뭐 해, 봄이라고! 외치듯이 멀리서 보기엔 아직 스산한 3월의 풍경 속에서 혼자서만 형광을 디며 도드라져 보이는 나무. 흐린 날에는 흐려서, 맑은 날에는 맑아서 누가 저 나무에만 불을 켜둔 것 같다. 68p



오늘도 N차 '봄을찾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매화향처럼 은은하게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걷는데 문득 마음속에 이 한마디가 가득 찼다.


'아 내가 이래서 이 계절 좋아하지.'


한 해를 잘 보낸다는 건, 계절을 더 잘게 나누어둔 절기가 '지금' 보여주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산다는 것. 네 번이 아니라 스물네 번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는 일이겠지. 69p



거실 소파에 올려두거나, 사무실 책상 옆에 두고 틈틈이 가볍게 읽기 좋은 책. 각 절기 때마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 이 춘분의 절기 즈음엔 '봄을찾기' 산책이 제철 행복이라 하니, 오늘도 해지기 전에 얼른 밖에 나가 걸어야겠다.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반짝이고 있는 '봄을'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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