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듣는 딸이 엄마가 됐을 때

세상의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by 라쏭쏭계란탁

남다뽕은 유독 옷에 관심이 많다. 이 또래 여자아이들이 으레 그러겠거니 했는데 주변에 물어보면 그냥 주는대로 입는 아이들도 많단다. 하지만 남다인은 두돌이 지나고 자기 주장이 점점 강해지는 순간부터 옷이나 액세서리 구두 등 꾸미는 행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좋아하는 옷을 몽땅 껴입은 남다인

좋아하는 옷을 다 입고 싶어서 옷을 막 다섯겹씩 껴입질 않나 갖고 있는 모든 헤어핀을 온 머리통에 가득 꼽고는 므흣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두돌이 지난 애기가 내 하이힐을 신고 왔다갔다 하기도 했고 네살 때는 본격적으로 하루에 옷을 대여섯번씩 갈아입혀달라고 졸라댔다. 다섯살이 된 지금은 유치원에 갈 때 입을 옷을 그 전날 모두 세팅해놓는다.(물론 내눈에는 촌스럽기 짝이없다.) 머리끈부터 양말까지 죄다 지 맘에 들어야만 한다.

하이힐 신고 걷는 남다뽕

이 작업의 뒤치다꺼리는 모두 내 몫이다. 처음에는 갈아입혀달라는대로 갈아입혀줬다. 머리도 내복을 입을 때는 삐삐머리를 해야하고 원피스를 입을 때는 로사(시크릿쥬쥬 캐릭터)머리를 해야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 하루에도 수없이 머리를 다시 묵는다. 어느순간부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하루에 대여섯번씩 옷, 머리 시중을 들자니 귀찮았고 문득 얘가 맨날 꾸미는 거에만 관심을 두다 공부는 뒷전이면 어쩌나 은근 걱정이 됐다.

내 옷이 맘에 든다며 굳이굳이 입혀달래서 만족해하는 모습

그때부터 난 남다인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옷은 하루에 무조건 한 번만 갈아입는거야!!!"라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애가 원하는걸 막았고 매사에 이거 해라 저건 안된다 등의 설명 없는 명령이 점점 늘어났다. 남다인은 저항했고 나는 "너를 위해서야!"라고 소리지르면서 남다인의 뜻을 무시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나는 부모님의 입장에서만 보면 드럽게 말 안듣는 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진로를 결정할 때 엄청나게 엄마아빠와 부딪혔는데 내 꿈과 미래계획을 제대로 들으려고도 안한채 무조건 정규직, 안정적 직장만을 강조하던 엄마아빠가 속물같아 보이고 싫었다.

리포터 시절의 나

대학생 시절, 남 앞에서 말하고 글을 쓰는걸 좋아해 방송사 입사를 준비하며 지역KBS리포터로 일할 때였다. 새벽같이 터미널로 가 버스로 출퇴근하면서도 일하는게 너무 신났고 산으로 들로 촬영다니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방송하는게 참 즐거웠다. 부모님은 TV에 나오는 날 신기해하면서도 리포터는 비정규직이고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늘 근심이었다.꿈을 위한 발판이 아닌 지금 당장 안정적 직장을 원하셨다.


그 해 나는 안타깝게도 언론사 입사에 떨어졌고 취직하라는 부모님 성화에 전공을 살려 국내 한 대형은행에 취직했다. 방송 촬영일과 은행 면접일이 겹쳤던 날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촬영을 가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결국 은행 면접을 택했고 그 날이 내 마지막 방송국 출근일이 됐다.


은행원이 되던 날 부모님은 세상 모든걸 가진 듯 기뻐하셨다. 그렇게 바라던 돈 많이 주고 안정적인 직장인이 됐으니 그럴만도 했다. 주변에서 하도 좋아하니 긴가민가 하며 입사를 했지만 은행에 다녔던 2년여는 내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운 시간이었다. 말과 글로써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목표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더이상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진 난 1년간의 백수생활을 거쳐 결국 기자가 됐다. 멀쩡한 직장 내팽게치고 백수질을 했고 은행연봉보다 훨씬 낮은 연봉을 받는 나를 보며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혀를 끌끌 차신다. 하지만 중요한건 나는 은행을 그만둔걸 지금까지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거다. 내 기준과 가치관대로 내가 원하는 길을 걷고 있고 지금 난 누가 뭐래도 썩 행복하다. 기자가 좋고 은행원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내 주변에는 나와는 반대로 기자가 됐다 은행원이 된 친구도 있다. 그역시 매우 만족해한다. 즉 사람마다 우선시하는 가치가 다르고 자신의 기준에 따랐을 때 가장 만족감이 높다는 거다.

꿈을 위한 노력의 흔적들


이런 내가 남다인한테 언젠가부터 세상의 프레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궁금해하기보단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자꾸만 모범생이길 원하는 나 자신이 내가 한때 그토록 원망했던 우리 엄마아빠랑 뭐가 다른가!!


옷갈아입는 얘기하다 생각이 너무 멀리 와버렸나 싶지만 앞으론 남다인 이야기를 좀 더 잘 들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누가 또 아나. 두살때부터 옷에 관심이 지대했던 남다인양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될지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엄마가 누구보다 훌륭한 카운셀러가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