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태생이 다르다
난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 성별이 다를 뿐 동일한 환경 아래서 키우면 똑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자란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성별로 규정짓고 각각 다른 역할을 부여하거나 여자다움,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행위에 엄청난 거부감을 느꼈다. 예컨대 핑크색은 여자, 하늘색은 남자 이런게 싫어서 내복을 사도 노란색이나 연두색 따위 중성적인 색을 선호했고 이름도 중성적인 이름이 좋았다. 둘째 이름을 '수현'이라고 지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울수록 성별에 따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기질이 다르다는걸 느낀다. 우선 남다인은 정말 핑크색을 사랑한다. 나는 무채색이 좋아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무채색 계열의 옷을 사다 날랐다. 핑크색을 사도 톤다운된 인디핑크만 샀고 파랑이나 초록색도 많이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살이 된 남다인은 본격적으로 핑크로 도배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려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핑크로 꾸민 패션 테러리스트가 탄생했다.
관심사도 주로 패션에 관련된게 많다. 공주 드레스에 환장하고 머리핀에 빠졌을 때는 머리통 전체를 헤어핀으로 덕지덕지 붙여놓기도 했다. 반면 남자애들이 좋아한다는 자동차나 로봇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좋아하는 물건이나 색깔 말고 성향도 확실히 달랐다. 남다인은 말하는걸 정말 좋아한다. 누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한 밤새도록도 모자랄 판이다.
얼마전 유치원 엄마들끼리 만든 단체톡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자아이 엄마가 "유치원 교가가 있나봐요. 애가 집에와서 계속 유치원 이름을 부르면서 흥얼대네요."라고 말했다. 이 얘기에 여기저기서 "맞아요.""신기하네요."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답변한 엄마들의 자녀는 모두 딸이었다. 아들 엄마들의 반응은 "교...교가요? 뭘 말을 해야 알죠. 그런것도 배우는군요."라고 대답했다. 집에 들어오면 장난감 갖고 놀기 바쁘지 엄마랑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아들래미는 거의 없다는 것. 자기반에 누가 바지에 똥을 쌌다는 것까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는 우리 딸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다보니 남자아이들의 엄마는 그렇게 같은반 여자친구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온다. 아들이 말을 안하니 같은반 여자애를 포섭해 궁금한걸 물어보는 거다. 그래야 준비물이라도 제때 챙길 수 있단다. 우리 시엄니가 궁금하신게 있음 당신 아들 대신 족족 나한테 물어보시는 것도 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남순동이는 이제 오십일이 갓 지난 남자애다. 근데 정말이지 좀 다르긴 한 것 같다.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는지 좀만 안씻어도 홀애비 냄새(?)같은 꾸리한 냄새가 나고 남다인과 달리 좀 쉬크한 느낌이다. 제발 웃어달라고 눈앞에서 온갖 재롱을 떨어도 아주 가끔 썩소 한번을 날릴 뿐이다.
그랬다. 남자와 여자는 태생부터 달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