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공동체가 주는 편안함
남순동(본명 남수현) 탄생 한달째. 나는 좀비가 되가고 있다. 9-6 산후도우미가 집에오고 오후 6시 이후에는 종종 엄마와 시어머님이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지만 애둘을 감당하기는 버겁기 짝이 없다.
평일엔 늘 10-11시 퇴근하는 세젤바쁜 남편과 밤새도록 울었다, 먹었다를 1-2시간 간격으로 반복하는 신생아. 온 침대를 휘저으면서 자는티 팍팍 내며 때때로 자면서 대성통곡하는 큰따님은 나를 산후우울증에 한걸음 더 가깝게 만들어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편의 존재와 역할은 내 육아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걸 여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MSG 조금 뿌려 존재 만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게 남편인 것 같다. 연이틀 사이 육아의 질에 극과 극을 달려 이틀새 일과를 분석해봤다. 조리원 퇴소 후 처음으로 쓰는 글이란건 오늘의 내삶의 질이 썩 괜찮았다는걸 뜻한다.
3.10 금
오전 9시 산후도우미 이모님 출근. 9시 15분 남다인 유치원 셔틀 태워보냄. 바로 왕복 1시간 운전해 산부인과 검진. 12시반 집에 오자마자 뻗음 2시반 기상. 일어나자마자 남다인 데릴러 유치원(적응기간이라 일찍 델러감). 3시부터 헬육아 스멜 스멀스멀. 아줌마 있는 6시까지는 그럭저럭 견딜만함. 6시 아줌마 퇴근. 시어머님 오셔서 신생아 봐주심. 내도록 안고계심. 할머니들 자주오면 손타는건 당연지사. 울리는거, 수유텀 맞추느라 굶기는거 못참으심. 그래도 무한감사하며 어머님이 애봐주시는 동안 큰애 씻기고 재움. 저녁 9시반 어머님도 퇴근. 세상 제일 바쁜 남편 연락두절. 신생아와의 체력전 시작. 1시간반~2시간 간격으로 깨서 울어댐. 바닥에 뉘여놓기만 하면 대번에 눈치채고 온몸을 오징어처럼 비틀어댐. 잠들라하면 깸. 밤 12시 거나하게 취하신 남편 들어와서 쇼파에 대자로 뻗음. 남편오면 하루 있었던일 수다로 풀어야 하는데 대화 불가상태. 까고싶음. 새벽에도 애는 수시로 깨고 큰애는 온 침대를 휘저으면서 자느라 내 자리 자꾸 침범(얘는 꼭 침대에 가로로 누워서 자는 바람에 너무 열받게 함)하고 남편은 여전히 쇼파에 뻗어있음. 신생아가 하도 내려놓으면 울어서 안고 자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서 바닥에 떨어뜨려서 화들짝 깸. 벌써 두번째 ㅠㅠ 이날은 침대에서 안고 자다가 옆으로 떨어졌는데 내 침대 바로 옆에 붙여놓은 아기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움. 하아..이러다 큰 사고칠거 같아서 급우울. 새벽 2시, 3시반, 4시반, 6시, 7시반, 8시반을 내눈으로 확인함. 그냥 밤을 샜다고 보면 됨. 아기를 제대로 못보고 있다는 죄책감에 잠못자서 눈돌아갈 갓 같은 피로함. 술쳐먹고 들어온 남편에 대한 분노?가 겹쳐 새벽 다섯시 결국 대성통곡. 애도 울고 나도 움. 모자가 우는 소리에 화들짝 정신차린 남편 등장. 20분간 엉엉 대성통곡하면서 도대체 내가 왜 둘째를 낳았을까 뼈져리게 후회함. 애는 남편이 들고 나감.
3.11 토
아침 8시반까지 예방접종 후 콧물이 나서 컨디션 난조인 신생아를 뜬눈으로 케어하다 남편한테 인수인계. 눈떠보니 아침 11시. 마루로 나가보니 남다인은 타요 시청중. 남순동은 아빠 품에 매달려있음. 세시간 정도 자고나니 정신이 좀 말짱해짐. 수유 후 남다인과 수다. 12시반 남편이 만들어준 볶음밥을 세상 맛있게 흡입. 점심 먹고 남다인은 일주일만에 제대로 본 아빠와 신나게 이야기하며 마트로 외출. 나는 남순동 케어. 1시간 후 돌아온 남다인은 아이스크림 먹고 또 타요시청. 날이 좋은데 집에 틀어박혀 타요만 보여주는게 괜시리 미안해짐. 남편은 낮잠. 오후 6시 낮잠에서 깬 남편에게 아이둘 맡기고 사우나. 사우나 후 집 밑에 상가에 뭐가 생기고 있는지 구경하면서 7시 귀가. 삼겹살 구워먹고 새로나온 카누라떼 한잔. 8시 남편이 사우나하러 나감. 남다인을 처음으로 자기 방에서 재움. 8시반 남다인 취짐모드 돌입후 남순동 목욕. 9시 남편 복귀. 10시까지 아기보다 남편에게 맡기고 취침. 새벽 1시 기상. 남편과 바톤터치. 남편은 남다인과 작은방에서 취침. 현시각 새벽 세시. 남순동은 자고 있고 정신 말짱한 난 브런치중..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과 맨정신의 나. 넓은 침대 혼자 쓰는게 너무나 행복함.
하룻새 우울함의 끝과 행복함을 왔다갔다하는건 물론 지금 내 호르몬 이상과 산후우울증의 영향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건 육아에 있어서 아빠의 역할과 남편의 존재가 알게 모르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다. 어제와 오늘 나의 수면시간과 노동강도는 엇비슷했다. 다른게 있다면 나와 함께하는 이가 남편이냐 타인이냐다.
아무리 아줌마와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신다고 해도 나와 운명공동체인 남편이 수고로움을 함께 하고 아이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나의 노고를 알아주느냐에 따라 내 정서가 달라진다. 다인이가 일줄만에 본 아빠에게 새로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걸 보면서, 남편이 서툰 손으로 차려준 볶음밥을 먹으면서, 고생이 많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길에 지친 내 마음이 위로를 받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남편들이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육아노동을 분담하는것이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여자들(특히 나같이 말해야 스트레스 풀리는 스타일)은 수다를 들어주고 고생이 많다고 공감해주는것 만으로도 아주 큰 힘이 되고 있단걸 말이다...남편이 주말출근하는 내일. 벌써 울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