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원하는 두명의 엄마

'나'와 '엄마'의 균형찾기

by 라쏭쏭계란탁
요즘은 여자도 일을 해야 돼요. 나이 들어도 자기 일이 있어야 힘이 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벌어야 여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요.
애 둘 잘 키우는게 돈 버는 일 아닐까요? 명문대 기부입학 하려면 십억 이상 든다던데 애들 명문대 보내는게 몇십억을 번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며칠전 오간 우리 엄마와 시엄마의 대화다. 한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애 셋을 낳고 결국 그렇게 원하던 교장의 자리에 올라간 엄마와 자식 키우느라 직장을 놓으시고 평생을 내조와 자녀양육에 헌신하신 시엄마의 생각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이 대화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결국 현 시대는 엄마에게 저 두가지 역할을 모두 원하는 과도기다. 스무살도 되기 전에 시집가서 내도록 애만 생산해내는게 여자의 역할이었던 조선시대가 어쩌면 더 속편했을지도 모른다. 대척점에 서있는 두 엄마를 가진 나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한단 말인가!

아이 둘을 낳고 직장생활 8년차에 접어든 내가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두 엄마의 생각이 모두 정답일 수도, 오답일 수도 있다는 거다.

학창시절 나는 늘 엄마가 고팠다. 당신 자녀들의 일정보다 일이 최우선이었던 엄마에게 난 항상 후순위였다. 초등학교 시절 걸스카웃 선서식날 모든 엄마들이 자녀들 가슴에 배지를 달아줄 때 난 엄마 대신 선생님이 배지를 달아줬고, 비오는날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 서있는 엄마 중에 우리엄마는 없었다. 비라도 올라치면 혹시라도 오늘은 엄마가 나와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나 우리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아침마다 나와 언니 머리를 엄청 꽉 포니테일 스타일로 묵어줬다. 잘 풀러지지 않게 하나로 묵는게 바쁜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걸 지금은 알지만 당시에는 매일매일 양쪽으로 땋거나 꼬랑지를 내리는 등의 요란한 머리스타일을 하고온 친구들을 하염없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지금와선 자신이 원하는 교장의 자리에 오른 엄마가 한없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난 엄마에게 늘 말한다. 엄마는 우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거라고.

남들은 세 자녀을 번듯하게 키우고 원하는 자리에 있는 엄마를 두고 일과 육아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하지만 적어도 셋중 나는 엄마의 부재가 나의 정서적 결함을 만들었다고 느낀다. 늘 엄마의 존재를 갈구하면서 나는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 부족했다. 이는 애정결핍과 정서불안으로 이어졌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걸 두렵게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난 주변환경에 쉽게 흔들리고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다.

희한한건 어디서나 무난하게 조직에 적응하고 외부의 자극에도 쉬 흔들리지 않는 친구들은 대부분 가정주부 엄마 밑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면서 자란 친구들이다.(물론 내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한 결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엄마가 절대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자녀에게 할애하고 사랑을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녀에게 대부분 시간을 쓰는 가정주부만이 정답일까. 그건 또 아니다. 자신의 일을 놓은 채 자녀에게만 매달렸다가 집착으로 이어진 부작용 케이스를 수많이 봤기 때문이다. 특히나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시집장가 보낸 후 엄마가 느끼는 일종의 공허함은 갱년기 우울증으로 나타날 때도 많다. 심지어 실컷 키워놓은 자식들은 자기들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엄마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되려 "울 엄마도 나한테 그만 집착하고 자기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툴툴되기도 한다.

결국 정답은 자녀와 어느정도 절대적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에선 아주 유명한 프리랜서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9-6가 보장되는 직장조차 희박한 우리네 조직사회는 엄마와 직장인의 양립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슬픈 현실이다.

오늘 누구보다 일과 육아에 열심이었던 선배가 사표를 냈다. 양가 부모님 모두가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육아독립군이었던 선배의 삶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더 안타깝다. 몸뚱이는 하난데 두명의 엄마의 역할을 원하는 사회구조와 인식은 많은 엄마들을 죄책감에 휩싸이게 한다. 그들에겐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