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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잇 Jun 05. 2020

야구, 타고난 재능이 성공을 보장할까?

북리뷰, 내츄럴(The Natural)

나는 올 시즌 팀의 에이스 4번 타자지만 부상으로 최근 한 주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팀의 숙원인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내일 한 경기에 달려있다. 몸 상태도 아직 온전치 않고 경기 감각도 엉망이겠지만 다행히도 주치의는 경기 출전을 허락했다. 퇴원 준비 중, 생뚱맞게 구단주가 병문안을 왔다. 말을 빙빙 돌리더니 조심스레 어두운 제안을 한다. 내일 타석에서 안타만 치지 않으면 10억을 현금으로 주겠다고. 15년을 기다려온 플레이오프 진출이 코앞인데 팀을 배신하다니! 악마 같은 구단주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순간 내 처지가 충동을 억눌렀다.

사실 나는 36세, 올 시즌 활약하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하위권 팀을 전전하던 선수여서 연봉이 1억이 되지 않는다. 곧 은퇴하게 되면 어떻게 돈을 벌고 살지 솔직히 막막한데 10억이면 안정된 곳에 건물 하나는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주간 병상에 누워있던 내가 무안타 경기를 한다고 해서 누가 의심하겠는가. 게다가 구단주는 나 말고 이미 다른 선수도 작업해놓았는지 우리의 패배는 확실하지만 혹시 모를 안전장치를 할 뿐이라고 한다. 정말 아무도 모를 것 같다…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해야 할까? 아니,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버나드 맬러머드 지음 | 김미정 옮김 | 사람과책 | 2009



『The Natural』, 번역하면 ‘타고난 자’에 가까울 것이다. 『더 픽셔』 로 퓰리처상을 받은 ‘버나드 맬러머드’가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 이 책은 1952년에 출간되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스포츠 문학 장르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야구의 인기가 좋지만 미국은 그 자체가 야구의 나라다. 소설을 읽다 보면 1950년대에 투박한 미국 프로야구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타고난 천재 야구선수 ‘로이 홉스’의 순탄치 않은 인생이 생생히 느껴진다.
 
가난한 시골 소년 로이는 시골까지 찾아온 스카우트 샘의 눈에 띄어 입단 테스트를 위해 시카고로 떠나게 된다. 우연히 만난 당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타자와의 투타 대결에서 완승을 하고, 19세 천재소년은 오로지 찬란한 미래를 맞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의문의 여인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총상을 당하고, 입단 테스트와 함께 찬란한 미래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로부터 16년 후, 보통의 선수들은 은퇴를 생각할 34세의 나이에 로이는 나이츠 구단에서 데뷔하게 된다. 때늦은 데뷔에도 타고난 천재 로이는 꼴찌팀을 리그 우승 경쟁팀으로 올려놓으며 일약 스타 선수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언뜻 위험할 것만 같은 매혹적인 여인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과연 로이의 삶은 꽃피울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원한다. 타고난 실력, 타고난 외모, 타고난 재력. 그러나 이 책은 타고난 재능인 로이 홉스의 쉽지 않은 삶을 선명하게 그린다. 운이 나쁜 것 같아 연민을 느끼다가도 늘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아니잖아!” 마음속으로 소리치게 된다.


 

타고난 재능만 있으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로이의 삶을 보면 프로선수가 마주쳐야 할 삶의 과제를 하나하나 볼 수 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사고로 로이는 입단 테스트도 하지 못하고 19세에 세상을 떠날 뻔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삶의 여러 조건을 우리는 통제하지 못한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치명적이지만 그것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늘 부상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다치지 않는 것도 실력이라지만, ‘난 쉽게 다치지 않아’라는 생각은 섣부른 교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로이가 팀의 스타로 발돋움하자 팬들은 그를 환호하고 온갖 매체도 그를 칭찬한다. 하지만 한 명의 기자는 로이가 덮고 싶은 그의 과거를 집요하게 캐내려 한다. 모두가 환호해도 기자 한 명 때문에 로이는 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언론은 세상의 이목이 쏠리는 스포츠 스타를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특히 요즘은 자본주의와 인터넷 기술 조합의 산물인 가짜뉴스(Fake news)의 시대가 아닌가. 스포츠 스타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일은 거의 없다. 더 호감으로든 아니면 그 반대로든 언론은 간혹 입맛대로 스타를 왜곡한다. 나는 스타가 되어본 적이 없지만, 나 아닌 내가 수만 가지 모습으로 산재돼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아가 분열되는 것 같은 정신 혼란이 오지 않을까…
 
팬들의 한호성은 영원할까? 나를 지지해주는 여론에 의존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은 딱 한 경기만 부진해 보면 쉽게 깨닫게 된다.
 

“팬들은 로이를 매우 사랑했지만, 로이는 팬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는 동안, 그들이 베풀어준 푸대접을 잊지 못했다. 종종 그는 팬들의 환호성 소리를 다시 목구멍으로 우겨 넣고 싶기도 했다…” 


훌륭한 선수라면 팬들의 환호와 사랑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에 마음의 자세가 흔들리지 않을 자립심과 평정심도 갖출 필요가 있다. 언론과 여론의 반응, 연봉 등은 운동선수의 삶에 매우 밀접해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 모든 것들은 운동선수의 직업적 본질인 ‘경기 자체를 즐기는 것’의 부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매우 가볍고 덧없는 이 부산물들은 선수의 경기에는 물론이고 삶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선수가 이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렇게 된다. 


겉모습과 달리 여리고 여린 스타 선수의 마음을 훔치려는 것이 어디 언론과 여론뿐이겠는가. 세상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책을 통해 로이의 삶을 훔쳐보고 있으면 중요한 순간에 그의 마음을 빼앗는 악마의 유혹에 화가 나기도 하고, 여지없이 마음을 빼앗기는 연약한 로이가 불쌍하기도 하다. 이 책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맬러머드가 로이의 삶을 저렇게도 처절히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동선수는 재능만 가지고 성공할 수 없다.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못할 뿐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아낼 수 없다. 생각해보면, 찬란했던 스타선수의 비참한 말로를 얼마나 자주 접하는가. 불법 도박, (성)폭행, 음주운전, 승부조작, 약물 복용 등으로 그들의 재능을 낭비한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생을 걸라는 낭만적인 속임수

한국 엘리트스포츠 시스템이 문제시되는 치명적인 이유는 바로 ‘올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엘리트스포츠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훈련 이외에 모든 생활은 사치가 되고 만다. 비록 그 순간이 학창시절이더라도 공부는 사치가 된다. 남들 책 보고 공부할 시간에 운동장 한 번 더 뛰는 게 네 인생에 도움이 될 거란 말이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인생은 사칙연산으로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늘….
 
인생의 기반을 다져야 할 학창시절, 운동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것이 정말 내 인생을 잘 준비하는 것일까? 나도 사실 학생선수 출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축구선수였다. 물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운동장을 누비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깨어있었던 부모님 덕분에 종종 책도 읽고, 시험 기간에는 영어 교과서 본문 정도는 외우고 갔다. 교회에 다니던 덕에 일반학생 친구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학생선수들보다는 그 시스템, 그 세계에 덜 매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축구부 숙소에서 죽어라 운동만 하던 내 처지를 아주 객관적으로 알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럴 수 있는 지혜나 혜안이 없었다.

고등학교 축구부 숙소에서 어느 날, 다 같이 TV를 보다가 한 선배가 갑자기 푸념을 내뱉었다. “내 생에 가장 큰 실수는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나가서 축구하고 놀았던 거야” 그 후로 그 선배는 학생선수가 된 것이다. 재미있는 건 거기 모인 동료, 선후배들 대부분이 학생선수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 시작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축구부가 명문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명문고가 많은가 비명문고가 많은가?

내가 스스로 지금 위치한 곳을 처음 성찰한 것이 그때였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늘 꿈을 가지라고 안달이었다. 사실 운동부에 있는 학생선수들은 누구보다 일찍 꿈을 갖고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꿈을 위해 살아가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했더니, 꿈을 키워주어야 할 공교육은 오히려 이들의 꿈을 앗아갔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처음 무엇엔가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3 시절 나갔던 전국대회에서 모조리 예선빵(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나는 이 문제의식을 새로운 꿈으로 삼기로 했다. 학생선수 타이틀 떼고 보니 나는 딱 밑바닥이었다. 그 후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도 가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다. 여전히 내 문제의식은 발전하고 있고 나는 공부하고 있다.


공부냐 운동이냐 강제되는 양자택일

가끔 지금 손흥민처럼 월드클래스로 활약하는 축구선수들을 볼 때마다 ‘내가 축구를 좀만 더 잘했다면…’하고 공상에 빠져 지금과 다른 나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 공상은 늘 ‘지금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월드클래스 축구선수의 나 vs. 지금의 나’의 대결로 이어지고,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지금의 내가 승리한다. 그래도 역시 삶에 대한 지혜와 월드클래스 축구 실력을 모두 갖는 것이 제일 좋다.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교육 시스템이 내게 그 둘 다를 길러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좋은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것을 얻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축구화를 벗고 공부를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20대 때도 똑같이 운동만 했으면 지금까지 얻은 지혜와 지식을 몰랐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10대 때 내 축구 실력이 모자랐던 것이, 고3 때 전국대회에서 모조리 예선 탈락했던 것이, 내가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용감하게 삶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공상의 문제는 운동과 공부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선수에겐 양자택일이 강제된다. 나는 이 구조에 조금이라도 반항해보려고 시험 기간이 되면 아버지가 사주신 영어 자습서를 보고 본문 해석이라도 외워가려 했다. 고1~2학년 때는 바보로 취급받기 싫어서 새벽에 화장실 변기에 앉아 몰래 공부했다. 그곳에선 공부하면 바보다.
 
험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학창 시절을 오로지 운동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사태에 대한 분별력과 판단력이 없어서 몰락하는 스타 선수들을 보면, 또 로이를 보면, 운동 재능이나 실력이 결코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담보하지 않는 것 같다. 성공적인 인생은 더더욱 먼 이야기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에만 올인하기에 이 넓은 세상에는 즐거운 것들이 너무도 많다. 악기를 다뤄보는 것, 존경받는 철학자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 책을 읽고 토론해보는 것,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종합해보는 것 등등… 세상에는 운동 말고도 알만한, 할 만한 것들이 평생을 사용해도 모자랄 만큼 널려있다.

나는 승부조작 사건을 접하면 열불이 난다. 승부조작은 스포츠가 가지는 핵심적 가치, 그 아름다움, 그 매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그런데, 내가 만약 여전히 운동에만 올인하고 있다면 나는 승부조작 사건에 지금처럼 열불이 날까?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인식은 할 수 있을까? 만약 운동에만 올인한 나에게 그런 제안이 오면 나는 거절할 수 있을까?

로이의 불행에 대해, 타고난 재능뿐인 로이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로이를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을 탓해야 할까? 재수 없는 로이의 운수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로이를 지켜주지 못한 시대와 사회를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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