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p107.
그날 저녁도, 그다음 날도 온종일 눈에 보이지 않는 시체가 마법을 부려 모든 행동과 언어를 부드럽게 해 주고 진정시켜 주며, 엷은 비단 같은 것으로 감싸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 동안에는 싸움도 노여움도 시끄러움도 웃음도 잠시 수면에서 사라져 버린 것처럼 파문 하나 일지 않았고, 잠잠한 물의 요정과도 같이 그림자를 감추고 말았다. 서로들 짝을 지어 익사한 친구 이야기를 할 때는 반드시 온전한 이름을 사용했다. 죽은 친구를 가리켜 '힌두'라는 별명을 부르는 것은 실례 같았다. 보통 때는 눈에 띄지도 않고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힌두가 지금은 그 이름과 죽음으로 커다란 수도원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p136.
자신들의 의무에 충실한 지도자들은 누구나 다 한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소망을 방해하는 독소와 딱딱하게 굳은 게으름을 발견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바른길을 걷게 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 온정 넘치는 젊은 조교를 제외하고는 여윈 소년의 얼굴에 깃든 실없는 웃음 뒤로 꺼져가는 영혼이 수렁에 빠진 듯 절망적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학교와 아버지와 몇몇 교사의 잔인한 명예욕이 숨김없이 드러난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차 없이 짓밟아 나약하고 아름다운 소년을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