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를 하면 항상 같은 유형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J(계획형)와는 굉장히 거리가 먼 파워 P인 사람이지만 아이러니하게 회사에서는 '프로계획러' 소리를 듣는다. '적어도 P는 아닐 줄 알았다'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과연 어떤 점이 나를 J형처럼 보이게 만들었을까?
나에게 맞는 시간 때 찾기
미라클 모닝이 성행했던 때가 있다. 물론 이 움직임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 놀라운 건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때(타이밍)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말 아침에 알람도 없이 일어나는 시간이 자신에게 맞는 기상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출근 때문에 억지로 일어나야 하는 사회적 시간이 아니라, 오로지 내 몸이 원하는 그 시간대가 궁금했던 찰나라 바로 시도해보았다. 주말 아침에는 늘어지게 늦잠을 잘 줄 알았으나 의외로 9시, 9시 30분 정도가 되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약간은 억울한 마음으로 세수를 하고, 간단한 아침을 챙겨 먹고 나면 눈앞의 빨래가 보이고, 집안일을 조금 한 뒤 오후엔 어김없이 외출한다.
계획이 없다 해도, 나에게 맞는 시간대만 찾는다면 하루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저절로 뒤따라온다.
파워 P성향인 나는 만약 저녁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일단 미룬다. 하지만 머리를 아예 쉬는 건 아니다. 외출해서 전시를 보거나 거리를 걸어도 메모장은 항상 수시로 켜놓는 것이다. 저녁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을 1순위로 두고,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아 떠나는 길은 마치 약초를 캐러 가는 것만 같다. 그리고 몇 개의 키워드와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미련 없이 논다. 그리고 저녁에 책상에서 마무리한다.
누군가는 할 일이 있다면 끝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다. 마감 시간 직전까지 고민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게 좋다. 무엇보다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집중력이 높아진다. 만약 이런 성향의 내가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면 이만큼 끝낼 수 있었을까? 시도는 해봤더라도 다시 내 패턴대로 돌아왔을 것이다. 이처럼 유행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체화하기보다는 기존의 내 시간대를 파악하고, 이 시간을 내 생활습관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Done list를 통해 끊임없이 칭찬하기
직접 작성한 Done list. 하루의 업무를 정리하고, 동기부여를 하는데 유용하다.
To do list를 쓰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학창 시절에 이미 깨달았다. 스터디 플래너를 쓰지만, 그날 아침에 세운 계획을 모두 100% 완수한 날은 극히 드물었다. 갑자기 숙제가 생기거나, 잊고 있던 수행평가가 다음날이라던가.. 하는 변수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 문제를 풀어야지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사칙연산조차 하기 싫은 날이 있지 않은가. 물론 꾸준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 난관을 모두 극복하고 기어코 100%에 수렴하는 달성률을 보이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동기 부여하지? 고민하던 찰나,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보기로 했다. 바로 Done list를 작성해보기로 한 것. 어떤 일을 '할지' 미래의 계획을 적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는지' 적는 것이다. 일종의 회고와도 비슷한 맥락인데, 그날 하루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적는 과정을 통해 내일 이어서 할 일을 간단하게 표기하면 맥이 끊기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세상엔 변수가 너무나 많다. 빼곡하게 채운 생활계획표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현실은 아닌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일종의 나만의 돌파구를 찾은 것은 내가 한 일을 적어서 오늘도 이만큼 고생한 나를 쓰담 쓰담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따르지 못해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것보다 내가 한 일을(물론 그 수가 양적으로 매우 적더라도) 적으면 뿌듯하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처리했으면 기대보다 잘 해낸 나에게 칭찬을 해주면 되고, 적었다면 내일의 나를 위한 동기부여가 된다. '양심이 있으면 내일은 업무 시간에 집중도 높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무슨일이 있어도 해내야 하는 계획과는 조금은 다른 여유로움이다.
일단 한다
인생에서 고민의 갈림길은 너무나 많다. 한 때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만큼 결정력이 부족했다. 할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 주변에 조언을 구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1. 고민할 시간에 일단 해봐!
2. 고민된다는 거 자체가 100% 확신이 없다는 거야. 나 같으면 안 할래.
그리고 나는 확신의 1번을 선택했다. 만약 그 일이 실패한다면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조금 더 잘 알게 된다. 혹은 다음에 시도할 때 '이런' 점은 좀 더 개선해야겠다는 방향성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재밌겠다' 싶은 강의나 프로젝트가 있으면 일단 지른다. 지른다는 행위에는 결제나 신청이 포함된다. 오늘도 나는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면, 일단 한다. 할까 말까 고민하던 시간에 시도라도 하면 '적어도 이건 나랑 안맞네'라는 결론이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썰물이 빠져나가면 조개껍질이라도 남으니까, 세워놨던 계획이 없어도 때론 즉흥적인 결정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렇게 보니 부지런한 P의 삶같기도 하다.
여전히 나는 틀에 짜여진 계획없이 산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을 때 융통성있게 헤쳐나갈 힘은 있다. 핵심은 '나에게 맞는 방법과 시간대를 적용'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한들 내가 실천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대신 틈틈이 생각하고 메모하고, 한 일을 나만의 방식대로 정리하며 일단 도전하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P형이지만 알차게 내 시간을 완성해나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