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결제만이 완치의 길
휴대전화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을 싫어한다. 눈이 시린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업무 카톡에 이골이 나 그런 탓도 있다. 이 좁은 5인치 속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스스로가 싫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그런 내가 엄지손가락과 두 눈에 모터 단 듯 전화기를 훑을 때가 있는데, 해외 항공권을 찾아볼 때다. 나는 꽤 오랫동안 습관성 스카이스캐너 증후군을 앓았다. 이 증후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당장 여행 계획이 없는데도 습관처럼 항공권을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슬 통장잔고를 봤다가 다시 또 검색하는. 종국에는 항공권 결제를 하고야 마는. 뭐 그런 대책 없는 증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인천에서 밴쿠버로, 밴쿠버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로, 다시 바르셀로나에서 인천으로. 루트를 이리저리 짜보며 ‘오, 이렇게 가면 싸군’, ‘오, 11월이 싸군’, ‘오, 이렇게도 갈 수 있군’ 혼잣말을 내뱉는다. 가족의 질타와 자꾸만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은 대표적 부작용이다. 오로지 항공권 결제를 통해서만 완치 가능한 무서운 증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도 한동안은 스카이스캐너를 들락거렸다. 날 떨어트린 회사의 채용공고를 부러 찾아보듯 미련이 남아 질척거렸다. 그러다 자괴감이 들 때면, 해외여행 카페에 들어가 나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의 글을 읽으며 동지애를 느끼곤 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언제쯤 항공권 결제를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언제쯤 타국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요. 아, 선생님!’
그렇게 스카이스캐너 증후군에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과감히 앱을 지웠다. 마치 구남친의 카톡을 차단하듯 후련함 반, 아쉬움 반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쓰다가 전화기를 켜봤다. 혹시나 무의식 중에 스카이스캐너를 다시 다운로드했나 싶어서. 다행히도 없었다.)
여행을 못 가게 되니 여행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여행이 왜 좋을까. 생경한 문화를 체험하는 기쁨?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여유로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풍광? 그것도 아니면 돈 쓰는 재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엔 공항이다. 나는 공항을 사랑한다. 공항이 주는 달뜬 기운이 좋다. 출국의 설렘과 귀국의 안도감,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그 공기 말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오프닝과 엔딩도 공항이 배경이었고, ‘공항 가는 길’이라는 노래도 있었지.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작품이 공항을 향한 애정과 로망을 쏟아냈다.
매거진 ‘공항냄새’는 여행이 그립다 못해, 이제는 공항 냄새마저 그리워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쓰는 여행기다. 다음 편에서는 매거진의 제목이자 내가 사랑해 마다하지 않는 ‘공항 냄새’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