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다.

서른 후반에 시작하는 인생 되새김질

by 지구대장

나는 찌질하다. 목표한 일을 단번에 성취하지 못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실해해야 될지 몰라 허둥댔다. 삼수를 하고서도 원하는 대학에 못갔던 것이 내가 인생을 반추할 때마다 언제나 시작하는 지점이다.


삼수생 시절은 따로 써야할 정도로 극치다. 일단 그부분을 스킵하고, 졸업하고 나서부터 쓴다.


당연하게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졸업후 바로 회사를 다녔고, 회사를 다녀도 계속 돈이 없었기 때문에 환승 이직 위주로 몇 군데를 더 다녔지만 계속 돈이 없어서 직업을 바꿔보고자 국비지원 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여전히 월세내고, 매일 끼니를 해결하고나면 돈이 없어서 어떤식으로든 밥벌이를 해야 했다.

돈이 늘 없는 와중에 월급까지 못 받은 적도 있었다.


신고와 고소까지 했어도 그 월급은 겨우 몇 만원 수준으로 일부만 받고 단념해야했다. 그로인해 월세도, 휴대폰비도, 카드값도 못내게 되며 생전 처음으로 독촉장을 받았다. 독촉장, 내야 할 돈을 내고 싶어도 해결 할 방법이 없었다. 그 중압감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눈물로 알게되었다. 고통은 다행히 다음 직장을 구하면서 사라졌다. 다만, 그때의 경험은 십 몇년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서 인생의 지표중 하나가 되었다.

조금만 말해보자면, 월급날과 카드값내는 날은 같은 날로 하지 않게 되었고, 항상 두 달 치 정도의 월급을 바로 사용 할 수 있는 계좌에 두었다. 일자리가 불안해질 때마다, 이직을 앞두고 미래가 불투명 해질 때마다 그 계좌를 들여다보면서 이번에도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두 달안에 해결만하면 되니까.

졸업 후에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는 동기들도 있었으나 난 그러진 않았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른데 있었으나, 나는 그럴싸한것 같지만 터무니없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다지 적절한 이유가 아니란 것도 잘 알았지만, 그 명분을 내세우며 서울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었다. 나의 명분은 졸업한 대학이 서울에 있었으니 서울에서 사는 것이었다.

졸업은 했지만 전공에는 흥미가 없었고, 졸업 직후에는 재미를 느끼는 분야를 명확하게 알지 못했고, 어떤 것을 잘 하고 싶은 것인지 두루뭉술했지만, 대학 졸업까지만 뒷바라지 해준다는 부모님의 엄포를 듣고 자랐으므로 나 또한 그래야 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되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졸업과 동시에 바로 밥벌이를 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회사를 갔다.

그 일은 배우지 않아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포토샵으로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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